한국 정부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7300억 달러(약 806조 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유라시아 대륙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장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 다만 2대 주주 자리를 인도, 호주 등 다른 나라가 차지하고 한국은 3대 내지 4대 주주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당초 예상했던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6일 관계 부처 논의를 거쳐 27일 한국이 AIIB 창설회원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이 같은 사실을 중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AIIB 가입과 관련해 주요국과 긴밀히 협의한 결과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국과 협의해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달 중 AIIB 창립회원국 모집이 끝난 뒤 6월에 협정문에 서명하기로 했다. AIIB는 한국을 포함한 창립회원국들이 올해 하반기에 각국 내의 비준 절차를 끝낸 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공식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정부가 AIIB 가입을 확정한 것은 이 기구를 통해 추진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규모 건설공사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고, AIIB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형 시장을 개척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최근 유럽 강대국들이 잇따라 AIIB 가입방침을 밝혀 중국이 AIIB를 독단적으로 운영할 여지가 크게 줄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지난해부터 줄곧 우려해온 AIIB의 경영 지배구조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돼 AIIB 가입으로 선회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번 AIIB 참여 결정으로 건설, 통신, 교통 등 인프라 사업에 경험이 많은 한국 기업들의 사업 참여 기회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는 “AIIB에 유럽 선진국 등 30개국이 넘는 나라가 참여키로 함에 따라 한국의 지분이 당초 예상보다 줄어 2대 주주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시설 투자수요는 2020년까지 매년 730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이 AIIB에 창립회원국으로 가입하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SOC 건설사업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용이 늘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돈독해질 수 있다는 점도 AIIB 참여 결정을 계기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이다. 게다가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AIIB에 참여하면 북한 지역 개발에 한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또 기존의 ADB가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이 주도하는 체제여서 한국의 입지가 크지 않았던 반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러시아, 몽골 등이 회원국이 되는 AIIB에서 한국 기업들은 AIIB 추진 건설, 토목사업 등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AIIB 참여 결정이 가능했던 데에는 최근 미국의 태도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주도하는 AIIB의 경영구조를 문제삼아 왔다. 경영구조의 핵심인 이사회가 상근이사를 둔 상임체제가 아니라 ‘비상임체제’여서 중국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국제기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대거 AIIB 회원국으로 참여하면 중국이 의사결정 과정을 완전히 장악하기 어렵게 되고 미국도 동맹국들의 가입을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각국이 지분에 따라 선임한 이사들이 중국의 무리한 투자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당국자는 “AIIB 참여를 계기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한국의 금융외교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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