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장례식이 치러진 29일, 건기(乾期)라서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던 싱가포르에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 나온 시민들은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된 채 목이 터져라 ‘리콴유’를 외쳤다.
나흘간 리 전 총리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던 국회의사당 앞에는 오전 6시부터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7시가 되자 구불구불 긴 줄이 이어질 정도로 인파가 늘어났다. 시민들은 미리 준비한 휴대용 의자, 도시락, 노트북 등을 꺼내 시간을 보내며 차분히 운구를 기다렸다. 오전 6시 45분에 집을 나섰다는 조안 리 씨(35·여)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나왔다. ‘파파’가 우리를 위해 한 일에 비하면 비에 젖는 것은 별일 아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지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부터 몸이 불편한 노인까지 시민들은 준비한 비옷과 우산을 꺼내 쓸 뿐 자리를 뜨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이 어찌나 조용했는지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낮 12시 30분경 리 전 총리의 유해를 실은 군용 포차(砲車)로 만든 운구차가 의사당을 나와 장례식장인 싱가포르국립대로 향했다. 승합차 한 대, 군용트럭 5대, 오토바이 2대, 경찰차 등 승용차 5대인 단출한 행렬이었다. 곡사포 4대가 예포 9발을 쏘자 포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갈수록 굵어져 폭우로 변했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싱가포르 시내 15.4km 구간에는 시민들이 운집해 비를 맞으며 자신들의 ‘국부(國父)’가 가는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꽃을 던지는 시민들도 많았다. 시민들은 국기(國旗), 리 전 총리의 사진, ‘싱가포르를 위한 당신의 헌신에 감사합니다’는 글귀가 적힌 팻말 등을 흔들면서 조금이라도 운구 행렬을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듯 길게 목을 뺐다.
데이비드 호 씨(78)는 “오늘처럼 억수 같은 비가 내렸던 47년 전 독립기념일이 생각난다. 하늘이 우리 정신력을 시험하는 것 같다”며 “리 전 총리의 삶은 이보다 더한 폭풍우도 견디어낸 삶이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도로 곳곳에서 수만 명이 우산을 쓴 채 대형 국기를 들고 양쪽으로 도열한 장면이 장관을 이뤘다”면서 “리 전 총리가 자신이 일군 조국 구석구석을 돌며 생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운구차가 리 전 총리의 오랜 지역구였던 탄종파가르 지역을 지나가자 시민들은 “파더” “리콴유” “생큐”를 외치며 화답했다. 공군 전투기들이 싱가포르 하늘을 갈랐고 검은 조기를 내건 해군 순찰 선박들도 포차와 발맞춰 운항했다.
운구차가 싱가포르국립대 문화센터에 닿은 시간은 오후 1시 50분경. 마중 나온 흰색 제복 차림의 군인들이 리 전 총리의 시신이 든 관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붉은색 싱가포르 국기로 뒤덮인 관은 투명 유리관에 넣어진 채 문화센터에 마련된 단상 위로 옮겨졌다.
장례식은 국영방송과 추모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해외 거주 싱가포르인도 추모 물결에 동참하도록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대형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동남아 최대 카지노업체 중 하나인 젠팅싱가포르 역시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영업을 중단했다. 싱가포르 민간항공국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구 행렬 상공에서 소형 무인 항공기의 운항을 금지시켰다.
한편 28일까지 국회의사당을 조문한 싱가포르인은 전체 550만 명의 10% 가까운 50만 명 이상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또 최소 85만 명의 시민들이 지역별 추모 장소 18곳에서 조문했다고 알려졌다.
4시간 반에 걸친 장례식을 마치고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장례식장에서 13km 떨어진 만다이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아시아의 거인’은 가족과 측근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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