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그늘이 늘 미안했던 아버지 차범근 월드컵 4강 차두리 태극마크 달고 홀로서기 슈퍼스타 베켄바우어조차 부러워한 내 아들
축구국가대표팀이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이틀 앞두고 훈련을 한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차범근(62) 전 대표팀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들 차두리(35·FC서울)가 대표팀 은퇴경기를 위해 첫 훈련을 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훈련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차 전 감독은 31일 부인 오은미 씨와 함께 아들의 은퇴경기가 펼쳐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또 찾았다. 아들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더 이상은 직접 볼 수 없었기에 차 전 감독의 시선은 경기장에 고정됐다. 하프타임에 아들의 은퇴식을 지켜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차 전 감독에게 차두리는 ‘고마운 아들’이다.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주름잡았던 아버지의 밑에서 아들이 축구선수로 성공해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차두리로서도 아버지의 그늘 아래 머문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 틀에서 벗어났다. 대표선수로는 아버지보다 더 나은 업적을 쌓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2010남아공월드컵 16강, 2015호주아시안컵 준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그 공로로 대표팀 은퇴경기까지 선물 받았다. 차두리는 더 이상 ‘차범근의 아들’로 불리지 않는다. 오히려 차 전 감독이 ‘차두리의 아버지’라는 얘기를 듣는다. 차 전 감독은 수식어를 바꿔놓은 아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사실 차 전 감독은 차두리에게 늘 미안함이 앞섰다. 대단한 아버지를 둔 탓에 축구선수를 택한 아들의 길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선 아들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다. TV해설위원으로 활동할 때도 대표팀에 합류해 경기를 치르는 차두리에 대해선 칭찬보다 질책이 먼저였다.
그러나 사석에선 달랐다. 차 전 감독은 아들 덕에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다. 독일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한 옛 동료들을 만나면 아들 자랑에 바빴다. 독일에서도 국가대표선수로 대를 이어 활약한 부자는 거의 없다. 차 전 감독이 차두리의 존재만으로도 독일의 슈퍼스타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차 전 감독은 아들이 선수생활을 마감한 이후 자신처럼 지도자로 변신하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이다.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가 감독이지만, 차두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봤을 때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다. 차 전 감독은 이제 ‘차두리의 아버지’로 아들이 열어나갈 또 다른 축구인생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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