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기 속 어우러진 남과 북… “마음의 통일 이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일 03시 00분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3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받는 탈북민에서 주는 탈북민으로]<下>함께 일하며 하나가 되다
사회적 기업 ‘커피창고’ 탈북민-장애인-노인 등 고용
로스팅-커피머신 기술 전수 ‘맞춤형 커피’인기… 매출 2배 껑충
“탈북민, 커피점 낼 수 있도록 지원”

커피원두 로스팅 전문 중소업체 ‘커피창고’에서 일하는 탈북민 채옥인 전연정 이혜영 씨(왼쪽부터)가 지난달 23일 서울 개포동 사업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커피 원두를 볶고 있다. 탈북민을 비롯한 사회 취약계층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 사회적 기업인 커피창고는 남과 북이 서로 화합하는 배려의 마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커피원두 로스팅 전문 중소업체 ‘커피창고’에서 일하는 탈북민 채옥인 전연정 이혜영 씨(왼쪽부터)가 지난달 23일 서울 개포동 사업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커피 원두를 볶고 있다. 탈북민을 비롯한 사회 취약계층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 사회적 기업인 커피창고는 남과 북이 서로 화합하는 배려의 마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보고 싶었는데 왜 이제 왔나요! 우리 색깔(애인을 뜻하는 북한 은어), 뭐 먹고 싶어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커피원두 로스팅(볶음) 전문 중소업체 ‘커피창고’ 사업장에선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탈북민 여직원들은 이제 남자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농담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김유리 커피창고 대표는 “살아왔던 문화가 달라 처음엔 직원들끼리 어색해했지만 1년 넘게 함께 일하면서 상처를 안고 있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됐다”며 “이제는 남자 직원들이 ‘옷이 예쁘네요’ ‘화장이 잘 먹었어요’ 같은 섬세한 칭찬도 건넨다”고 말했다. 직원 12명의 조그만 회사지만 그 안에선 남북이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場)이 펼쳐진 것이다.

커피창고는 탈북민 3명을 비롯해 장애인과 노인, 장기실직자를 고용해 사업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원두를 볶는 일은 탈북민 직원들이, 제품 배달과 커피머신(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먹는 기계) 수리 등은 다른 직원들이 맡고 있다.

커피창고는 지난해 전년보다 2배 증가한 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의 최대 장점은 신선한 볶음 원두를 신속하게 맞춤형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미리 볶아놓은 커피 원두를 팔지 않고 주문을 받은 뒤에 바로 볶기 시작한다. 주문받은 커피 원두는 전국 어디든 사흘 안에 배달한다. 가장 맛이 좋은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원두의 종류는 자체 개발한 블렌딩 원두 8종 등 총 20여 종에 이른다.

양지선 커피창고 과장은 “하루 최대 400kg의 원두를 볶아 공급하고 있다”며 “최근 사내 복지 차원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먹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단골 고객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커피창고는 커피머신을 무상으로 대여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성공 비결은 직원들의 능력과 자부심, 그리고 화합으로 꼽힌다. 탈북민 직원 중 2013년 이 회사에 가장 먼저 입사한 이혜영 씨(44)는 “2012년 한국에 와서 처음엔 식당 서빙을 했는데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보람을 느끼기 힘들었고 그릇을 깨는 작은 실수에도 움츠러드는 일이 많았다”며 “이젠 모두가 즐기는 커피 원두를 최적의 상태로 볶아내는 기술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탈북민 직원들은 이제 막 한국사회에 발을 내디딘, 하얀 도화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활력이 넘치고 어떤 기술을 가르쳐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장점이 있다”며 “다른 직원들도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고 자기만의 기술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커피창고는 ‘취약계층이 만든 제품은 질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바로잡은 성공 사례인 셈이다.

모르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힘을 합쳐 배우다보니 탈북민 직원과 다른 직원들이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경조사도 빼놓지 않고 챙겨준다. 최근 탈북민 직원 전연정 씨(43)는 중국에 살고 있는 사촌오빠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김 대표와 직원들은 한국에서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는지 등을 알려주고 함께 슬퍼하며 아픔을 나눴다고 한다. 전 씨는 “회사를 통해 한국사회에 배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내 위치에서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해 돌려주는 것이 남북 간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경험한 따뜻함은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함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입사한 탈북민 직원 채옥인 씨(49)는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일하는 동료 직원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며 “전에는 낯선 환경에 마음의 문이 닫혀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일반 지역주민들에게도 다가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커피창고는 올해 안에 아파트형 공장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확장 이전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추가로 뽑을 생산직 직원도 탈북민 출신으로 채울 계획”이라며 “앞으로 탈북민 직원들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해 스스로 커피전문점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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