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풀린’ 시아파 맹주, 수니파 리더와 격돌 가능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4일 03시 00분


[이란 핵협상 타결/합의 내용과 과제]
중동 질서 지각변동 예고

이란 핵협상 타결은 단순히 미국 이란의 관계 개선이나 이란의 핵무장 저지를 넘어 중동 질서의 일대 재편을 몰고 올 ‘사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과 전쟁으로 번진 예멘 사태 해결이다. 두 곳 모두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교 유혈 전쟁으로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반(反)이란 세력의 대결 구도이기 때문에 이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기대가 싹트고 있다. 미국이 이번에 핵협상을 타결한 데에는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한 목적과 함께 미국 혼자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시리아와 예멘 사태에 이란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는 계산도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동의 맹주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이번 타결을 계기로 이란이 세계무대에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에 따라 중동 내 힘의 불균형을 가져와 시아파 이란과 여타 수니파 아랍 국가들 간의 종파 분쟁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당장 시리아 내전과 예멘 사태가 관건이다. 그동안 이란은 시아파인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공공연하게 지원해왔고 쿠데타로 정치적 실권을 쥔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의 배후로도 지목됐다. 쿠데타로 쫓겨난 예멘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아랍연맹 정상회의에서 후티를 ‘이란의 꼭두각시’로 지목했을 정도였다. 이에 사우디는 시아파의 예멘 장악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대대적인 공습으로 맞서고 있다. 이란은 핵협상 타결 직전 “예멘 사태 해결을 위해 사우디와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오랜 동맹이었던 사우디 및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정보국장 출신인 투르키 파이살 왕자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상은 이란에 핵개발을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사우디도 동등한 권리(핵개발)를 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도 “사우디가 향후 수니파 동맹국인 파키스탄과 함께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며 이집트를 앞세운 ‘아랍 연합군’ 창설로 이란의 영향력을 억제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과 사우디는 향후 세계 석유시장의 패권을 놓고도 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협상을 줄기차게 반대해온 이스라엘이 극단적인 경우 이란 핵시설을 폭격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1981년엔 이라크, 2007년엔 시리아의 원자로를 공습해 파괴한 전력도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도 심상치 않다. 미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포함해 중동 및 이스라엘 정책 구상을 전면 재검토하는 상황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란의 성장에 위협을 느낄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이전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동맹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전부터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수니파 국가들과 교류해왔다. 약 2개월 전에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이 이란 관련 정보를 나누기 위해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칸대의 가말 압델 가와드 솔탄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동맹들은 이전보다 미국을 훨씬 덜 신뢰한다”며 “각국 정부들이 독자 행동을 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란#핵협상#수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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