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38>女프로농구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무명선수 시절… 떠돌이 신세가 내겐 행운”

“위 감독님이시죠. 축하드립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식당 주인의 인사가 낯선 듯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3일 서울 송파구의 한 냉면집에서 만난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44)이다. 최근 여자프로농구에서 우리은행의 통합 3연패를 이끈 그는 “여전히 누가 알은척하면 쑥스럽다”며 웃었다.

○ 꼴찌팀 맡아 3년 연속 통합 우승

3년 전 이맘때 위 감독은 코치로 있던 신한은행을 떠나 우리은행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신한은행은 통합 6연패를 달성한 직후였던 반면 우리은행은 4년 연속 최하위였다. 콧노래를 부르던 부잣집을 제 발로 박차고 나와 고생길을 택한 것이다.

“처음 감독 제안 전화를 받고는 사기인 줄 알았다. 옮길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정장훈 우리은행 농구단 사무국장이 집까지 서너 번 찾아와 내가 계약 안 하면 자기가 사표를 내야 한다며 매달리더라. 나를 절실하게 원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감독 기회라는 게 평생 오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같아 도전하게 됐다.”

신한은행에 함께 있던 전주원 코치도 함께 옮겼다. 이를 두고 농구계에서는 결국 한국 여자농구 최고 스타인 전 코치에게 감독을 맡기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위 감독을 끌어들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나 역시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때 전 코치도 그러더라. 자기까지 함께 옮기는 게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나는 전 코치에게 같이 가서 도와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흔히 감독들은 화려한 경력의 코치를 쓰지 않는 게 한국 스포츠의 풍토다. 언젠가 자신을 밀어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소위 ‘가방모찌(수행비서)’형 코치가 선호되는 이유다. 위 감독이 전 코치와 한배를 탄 뒤 아마추어 지도자 출신 박성배 코치까지 영입해 탄탄한 코치진을 구성한 것도 우리은행 전성기의 비결로 꼽힌다.

은행 팀들이 대부분인 여자프로농구에서 다른 팀들은 우리은행을 ‘워리’로 불렀다. 다분히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에 걱정거리가 많다는 의미였다.

“바닥을 헤매던 우리은행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꿔서는 효과가 없다고 봤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1년 안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못하면 감독 관두려고 했다.”

○ 명감독들에게서 전술-선수관리 배워

위 감독은 ‘몸이 기억해야 이긴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위 감독 밑에서 우리은행 선수들은 난생처음 남자고교 선수들과의 연습경기로 거친 몸싸움을 견뎌야 했다. 훈련 성과가 없으면 자정까지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녔다. 그는 “슈팅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슈팅 시도조차 안 하면 눈물이 날 만큼 혼냈다. 자신감이 생기면서 고비마다 남에게 떠넘기기 급급하던 악습이 사라져 뒷심이 붙었다”고 했다. 흔히 우승이 확정된 뒤 감독은 헹가래를 받지만 그는 선수들에게 단체로 밟히는 수모를 겪었다. 혹독한 훈련에 대한 선수들의 화풀이 세리머니였다. 선수들에게 깔리는 그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부산이 고향인 위 감독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를 시작했다. 고교 1학년 때 한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증세로 1년을 쉬었다. 고단한 재활 끝에 정상을 되찾아 다시 공을 잡은 그는 단국대에 진학했다.

“집안이 어려워 농구를 관두면 대학을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공부해서 교사가 되려고 사범대를 택했는데 쉽지 않더라. 한국은행 같은 팀에 들어가고 싶어 죽기 살기로 운동했다.”

대학 졸업 후 은행 대신 아마추어 현대에 입단한 뒤 프로 SBS, 동양, 모비스 등을 전전했다. 늘 후보 신세였지만 어떤 팀 유니폼을 입든 끈끈한 수비와 성실한 태도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위 감독은 “신선우 김진 유재학 최희암 등 최고의 지도자 밑에서 뛰면서 전술뿐 아니라 선수 장악과 관리 방법 등을 많이 배웠다. 떠돌이 신세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현역 때 무명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코치로 일곱 번, 감독으로 세 번 등 이번에 10번째 우승반지를 끼게 됐다. 선수로는 태극마크를 한 번도 단 적이 없는 그는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 앞으로는 선수들을 키워보고 싶다

그는 요즘 ‘우리(위·We) 감독’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성공한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선수 때부터 15년 넘게 지켜본 기자가 “이젠 명장으로 불러도 되겠다”고 했더니, 그는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좋은 선수들을 만났을 뿐이다. 앞으론 선수들을 키워 보고 싶다. 난 건망증이 심하다. 지난 우승은 잊었다.” 늘 눈높이를 높여온 위 감독의 시선은 벌써 새로운 ‘위’를 향하고 있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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