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딧불이입니다. 도심 속, 흔하게 볼 수 있는 스마트목과의 터치류 곤충입니다. 빛이 나는 이 부분은 폰딧불이의 더듬이이자 앞발입니다. 폰딧불이는 이 부분을 이용해, 매우 멀리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건 못 보는, 지독한 원시(遠視)입니다.’
인기 작가 조석의 히트작인 네이버 연재 웹툰 ‘마음의 소리(893화)’에 나온 대사다. ‘폰딧불이’는 어둑한 밤에 반딧불이처럼 환히 빛나는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인 양 몸에 밀착하고 활동하는 사람을 풍자한 말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하루를 마무리하는 퇴근길이나 하교 시간에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거나 강의를 들으며 식견을 넓히지만 정작 코앞에 닥친 전봇대나 계단은 보지 못해 사고를 당한다. 더구나 야행성인 반딧불이와 달리 이 시대 폰딧불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교통안전공단이 2013년 수도권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5.7%가 보행 중 스마트폰을 1회 이상 사용한다고 답했다. 또 이 중 20%는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다고 했다.
본보 취재팀이 6일 오후 9시경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관찰했더니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앞사람 뒤꽁무니만 쫓는 수많은 폰딧불이가 발견됐다. 김모 씨(38)는 보행신호가 끝나가는 줄도 모르고 횡단보도를 천천히 건너다 자동차 경적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팀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느라 신호가 바뀌는 줄 몰랐다. 그냥 걸었으면 충분히 건너고도 남았을 텐데 자칫하면 사고가 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7일 오전 서울 도봉구 지하철 창동역에서는 스마트폰 탓에 20대 초반의 젊은 커플이 생이별(?)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목격됐다. 스마트폰을 보며 남자친구를 뒤따르던 여성이 문이 닫히는 줄 모르고 걷다가 전철을 타지 못한 것. 전철 안에 홀로 남은 남성은 허망하게 여자친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여성이 전철 문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폰딧불이에게도 사정은 있다. 맞벌이 이모 씨(38·여)는 “집에 가면 아이들 돌보느라 내 시간을 갖기 힘들어 퇴근길에 드라마나 만화를 보며 자유를 맛본다”고 답했다. 퇴근 후에도 메신저 단체방(그룹채팅방)으로 상사의 지시가 계속 내려와 눈을 뗄 수 없다는 직장인도 많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자녀나 조카가 스마트폰을 보며 거리를 걷고 있다면 어떨까. 7일 오후 1시 40분경 취재팀이 찾아간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는 엄마 손을 잡고 하교하는 1, 2학년생이 많았다. 그러나 몇몇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만 보고 위험하게 도로를 가로질렀다. 어린 폰딧불이였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어린이안전학교 대표)는 “모방성 강한 어린이는 어른이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모습을 보고 ‘별문제 없구나’라고 생각해 따라하기 십상이다”라며 “어른이 모범을 보이며 안전하게 걷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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