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메모관련 철저 수사”… 일각 “前정권 노린 탄환 폭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3시 00분


[성완종 게이트/검찰 수사 어디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지’ 한 장에 10일 정치권은 물론이고 검찰도 발칵 뒤집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 개발에 얽힌 비리를 겨냥했던 검찰 수사는 일순간에 ‘살아 있는 권력’을 겨누는 부메랑으로 급반전됐다. 더욱이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이 대부분 친박(박근혜) 핵심이어서 검찰 수사의 종착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 “전 정권 노렸던 탄환이 폭발한 격”

이날 오후 채널A를 통해 ‘성 회장 리스트’ 메모가 공개되자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다가 느닷없이 현 정권의 ‘탄생 비밀’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당초 검찰은 과거 회사 자금난 등 성 회장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회사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간 흔적을 곳곳에서 포착해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를 준비해 왔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 임관혁)는 성 회장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됐던 9일 오전까지만 해도 경남기업이 은행권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회사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간 흔적을 잡고 당시 정권 인사들에 대한 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차였다. 수사팀에선 “(전 정권을 노리고) 장전했던 탄환이 폭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사격도 못한 채 총 쥔 사람이 다친 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검찰로선 사활이 걸린 사건이 됐다.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비칠 경우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비판이 검찰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성 회장이 자살 직전 특정 언론과 50여 분간 전화 통화를 한 만큼 또 다른 내용이 추가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수사팀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자칫 검찰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사건 수사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전달자’가 수사 성패 좌우

검찰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수사 대상자를 사법 처리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수사 단서가 성 회장의 메모지와 경향신문과의 통화로 남긴 육성 주장뿐이라는 점이다. 성 회장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장부’나 당사자들과의 대화 녹취록 등 구체적 물증이 없을 경우 입증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는 성 회장의 금품 전달에 관여한 회사 관계자 등 ‘전달자’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 회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2006년 9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10만 달러를 전달할 때) 수행비서도 따라왔다”며 금품 전달을 증언해줄 제3자가 있음을 강조했다.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7억 원을 줬다’고 주장할 땐 “거기(리베라호텔)까지 가고 심부름한 우리(경남기업) 직원들이 있다”고 했다. 리스트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이 끝까지 금품 수수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구체적인 입증 자료가 확보되지 않을 경우 제3자의 진술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금품 전달이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사법처리 여부는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공여자’가 될 수 있는 성 회장이 사망한 상태에서 주변 인물들의 진술만을 근거로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뇌물 수수 혐의의 공소 유지에는 객관적 증거뿐 아니라 공여자의 일관된 진술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기춘 허태열 전 실장에게 금품을 줬다고 주장한 시점은 각각 2006년과 2007년. 이 돈의 성격이 정치자금으로 판명될 때에는 공소시효(당시 5년, 현재 7년)가 지났다. 다만 당시 이들이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1억 원 이상의 대가성 있는 돈을 받았다면 공소시효가 10년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 혐의를 적용할 수는 있다.

검찰은 10일 성 회장이 생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 2대를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통화 기록 분석에 나설 방침이다. 또한 전화기에 리스트 메모에 이름이 오른 여권 인사들과의 통화 내용 녹취파일 등이 있는지도 확인하기로 했다. 검찰은 성 회장의 장례가 끝나면 성 회장을 가까이서 수행했던 측근 등을 불러 경위를 조사하고 유족과 경남기업에 관련 자료도 요청할 계획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신동진 기자
#성완종#메모지#정치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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