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에 김기춘만 날짜 기록… 수사 중요 단서 될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3시 00분


[성완종 게이트/검찰 수사 어디로]
10만달러 분산 환전했다면… 계좌추적으로 확인 가능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유력 정치인 8명의 명단 메모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제외하곤 모두 날짜가 특정돼 있지 않다.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7억 원)과 유정복 인천시장(3억 원), 서병수 부산시장(2억 원)과 홍문종 의원(2억 원), 홍준표 경남도지사(1억 원)는 각각 액수만 적혀 있고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름만 적혀 있다.

성 회장이 김 전 실장에 대해서만 10만 달러라는 액수와 함께 ‘2006년 9월 26일’이라는 날짜를 특정한 배경에는 김 전 실장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 회장 측 지인은 “성 회장은 최근 이뤄지는 고강도 사정 정국에 대해 사실상 김 전 실장이 뒤에서 조종하는 거라 생각했던 걸로 안다”며 “김 전 실장의 성격상 사건이 불거진 이후 성 회장의 연락을 피했을 텐데 원망이 더욱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회장은 ‘9월 26일’ 옆에 ‘독일 베를린’이라고 적어 놓았으며, 이는 당시 9월 26일자 모 신문 사진에 김 전 실장의 독일 현지 사진이 실린 것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이 외화 액수와 구체적 날짜를 남긴 건 검찰 수사에 단서를 준 셈이다. 2006년 9월을 전후해 성 회장과 측근, 경남기업 직원들의 계좌를 추적하면 환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 한 사람이 같은 날 1만 달러가 넘는 외화를 환전하면 금융기관이 환전한 사람과 액수, 시기 등을 국세청과 관세청에 통보해야 한다. 성 회장이 10만 달러를 환전했다면 최소 직원 10명을 동원해 분산 환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건넬 100만 달러를 환전할 때 직원 100명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과 액수가 적힌 정치인들은 홍 지사를 제외하곤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들이다. 만약 친박 핵심들이 돈을 받았다면 사실상 대통령 선거라 불릴 만큼 치열했던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을 가능성이 높다. 7억 원으로 액수가 가장 많은 허 전 실장은 당시 박 후보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으로 경선자금을 모으려 동분서주했다.

메모에 적힌 정치인들은 2012년 대선 때에도 박 대통령 캠프의 핵심을 맡았던 개국공신들이다. 성 회장이 이 총리나 이 실장에 대해선 이름만 적은 것은 현직 실세라는 점 때문에 고심을 하다 경고 메시지만 남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성완종#정치인#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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