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檢엔 경조사비라고 하자”… 뭉칫돈 용처 말맞추기 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성완종 게이트/검찰 전면수사]‘成회장-임원 녹취록’ 검찰서 확보

검찰총장 “질문 안 받습니다”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김진태 검찰총장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꾸려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검찰총장 “질문 안 받습니다”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김진태 검찰총장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꾸려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남기업 임원진과 나눈 검찰 수사 대책회의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녹취록에는 경남기업이 2007년 이후 최근까지 8년간 건설 현장 ‘전도금’(현장 사업장 운영을 위해 본사에서 보내주는 경비) 명목으로 사용한 현금 32억 원의 용처를 검찰에 어떻게 설명할지를 논의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 檢, ‘32억 원 용처 대책’ 녹취록 확보

경남기업과 검찰 등에 따르면 성 회장은 지난달 말∼이달 초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임원들과 법무법인 사무실 등에서 수시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과 임원진이 나눈 대화가 녹취로 남아있었는데 검찰이 이를 확보한 것이다.

회의 녹취록에는 ‘용처를 밝힐 수 없는 현금 32억 원’을 검찰에 어떻게 소명할지를 논의한 대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당초 성 회장을 구속한 뒤 250억 원대 횡령 자금 중 본사가 건설 현장에 건네는 ‘현장 전도금’ 명목으로 인출된 32억 원의 용처를 집중 조사할 계획이었다. 경남기업의 현장 전도금은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5000만 원, 1억 원 단위로 인출됐다. 검찰은 현장 전도금이 집행된 건설현장은 정작 공사가 완료된 현장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이 돈이 정·관계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현장 전도금 명목으로 회계 장부를 허위 작성해 돈을 빼돌리는 건설업계의 고전적 수법으로 정치권 로비 자금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성 회장 측은 이 돈의 용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들에게 ‘구명 전화’를 거는 한편 진술 방향과 수위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기업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전액 현금으로 쇼핑백에 담아 (성 회장에게) 건네줬으나 용처는 모른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회계 책임자인 한모 부사장 등에게서 성 회장의 승인을 받아 인출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성 회장을 추궁했지만 성 회장은 “보고받은 적이 없다. 인출 사실도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회사 관련자들은 검찰 조사 후 대책회의에서 “경조사비로 썼다고 하자” “회사에 필요해서 썼다고 하자”라는 등 대응 방안을 고심했고, 이런 정황이 고스란히 녹취록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은 친박 인사들에 대한 서운함과 억울함을 토로했으며, 이 과정에서 검찰과 어디까지 딜(거래)을 해야 할지를 놓고 회사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대화 녹취록 내용을 ‘퍼즐 맞추기’의 단서로 활용할 계획이다.

○ 노무현-이명박-박근혜 3개 정권 수사로 확대?

문제의 ‘현금 32억 원’은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수시로 인출됐다는 점에서 성 회장이 언론을 통해 친박 핵심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밝힌 시기는 물론이고 2007년 특별사면, 경남기업 워크아웃 당시 금융당국 특혜 의혹 등 시기와 겹친다. 이 때문에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 수사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 3개 정권에 걸친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당초 ‘32억 원’ 중 일부가 2007년 말 성 회장 사면 로비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성 회장이 구속되면 이에 대해 추궁할 계획이었다. 과거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 등으로 두 차례 기소됐던 성 회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2005년, 2007년 두 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7년 11월엔 서울고법의 유죄 판결 직후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고 한 달여 만에 사면 수혜자가 되기도 했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가 성 회장을 사면 대상에 급하게 포함시키느라 사면 일정을 연기하기도 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확인 중이다.

수사팀은 △성 회장이 경향신문과 나눈 통화 내용에 담긴 금품 전달 액수와 시기 △인출된 현금 규모와 시기를 분석한 뒤 경남기업 회계 담당자, 현금 인출자, 성 회장의 핵심 측근 등을 조사해 현금의 종착지를 찾아낼 계획이다. 비록 핵심 공여자인 성 회장이 숨졌지만 주변 인사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실체 규명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장관석 jks@donga.com·변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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