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핵심부를 정조준한 ‘성완종 리스트’가 2012년 대선자금 수사로 번지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12년 전 ‘차떼기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진 당시처럼 당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엄정한 대처를 강조하며 “2003년 대선자금 사건 당시 ‘천막당사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2년 만에 천막당사를 다시 화두에 올린 것은 이번 사태가 당시 한나라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선자금 사건과 맞먹는 파괴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 유 원내대표는 이회창 전 총재 옆에서 대선자금 사건 수습을 총괄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기업으로부터 150억 원을 트럭째 전달받는 등 823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일이 드러나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썼다. 그때 무너져가던 당을 일으킨 사람이 2004년 당권을 이어받은 박근혜 대표였다.
박 대표는 “당사를 팔아 국고에 귀속시키겠다”며 국회 앞 중앙당사를 떠나 여의도 공터에 천막을 설치했다. 천막 당사에 화장실이 없어 박 대표가 인근 건물 화장실을 찾아다니는 모습도 눈에 종종 띄었다. 두 달 넘게 천막당사에서 자성하는 모습에 민심은 움직였다. 그해 총선에서 탄핵 역풍까지 겹쳐 많아야 50석에 그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121석을 얻으며 재기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무엇이 당이 사는 길이고 무엇이 임기가 3년 남은 대통령을 진정으로 구하는 길인지 우리는 같이 고민해야 한다”면서 “우리 당은 국민만 바라보고 원칙을 지켜나가겠다”고도 했다. 이는 ‘성완종 리스트’에 지명된 인사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며 대선자금 스캔들을 벗어나기 위한 뼈아픈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완종 파문’은 12년 전 ‘차떼기 스캔들’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엔 한나라당의 비주류였던 박 대표가 당권을 이어받아 당 혁신에 앞장서는 과정에서 이회창 전 대표 등 당내 구세력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당시와 달리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표적이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만든 대선공신인 친박(친박근혜)계 핵심과 현직 대통령비서실장, 현직 국무총리까지 정조준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은 있으나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성, 청렴성을 강점으로 내세워 온 만큼 ‘돈 추문’의 후폭풍이 클 것이란 관측이 있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여권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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