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마지막 투수만 챙기는 세이브, 괜찮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5일 03시 00분


타자들이 1회초 1점을 냈습니다. 투수 9명이 1∼9회말을 1이닝씩 책임지고 무실점으로 막았습니다. 그러면 이 투수 9명의 기록은 어떻게 될까요? 정답은 2회에 던진 투수는 승리, 3∼8회를 맡은 투수는 홀드, 9회에 나온 투수는 세이브입니다.

규칙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영어 낱말 세이브(save)는 ‘구하다’라는 뜻. 그러면 위기에서 팀을 구한 투수에게 세이브를 줘야 하는데 이 경기에서 정말 9회에만 위기가 있었을까요?

이건 어떨까요? 지난해 10월 13일 삼성 김기태(28)는 한화를 22-1로 이긴 경기에 나와 7∼9회를 던졌습니다. 야구 규칙은 점수차에 관계없이 ‘최소한 3이닝을 효과적으로 투구한’ 투수에게 세이브를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김기태는 21점 차를 막아낸 공로로(?)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점수차 세이브 기록을 세웠습니다.

기록이 있는 곳에는 ‘기록 챙겨주기’도 있는 법.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마무리 투수가 세이브를 기록할 수 있도록 투수를 바꾸는 감독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나온 261세이브 중 23세이브(8.8%)는 아웃 카운트를 딱 하나 잡아낸 투수가 가져갔습니다. 거꾸로 감독들은 8회 이전에 위기가 닥쳐도 ‘9회에 있을지도 모를 위기’에 대비해 마무리 투수를 아껴두기도 합니다. 지난해 261세이브 중 160세이브(61.3%)는 딱 1이닝만 던진 투수 차지였습니다.

물론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게 처음부터 빈손이었던 것보다 더 아깝습니다. 그러니 프로야구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4년간 90억 원) 투수 윤석민(29)을 한 이닝만 책임지는 마무리 투수로 쓰겠다는 KIA 김기태 감독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그런데 사실 ‘마무리 투수는 9회에 등판한다’는 명제가 그리 오래된 건 아닙니다. 1969년부터 세이브를 공식 기록으로 채택한 메이저리그에서도 9회 등판 비율이 50%가 넘어간 투수(존 프랑코)가 나온 건 1987년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뒤로 9회 역전패 비율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표 참조).

반면 마무리 투수는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지금 같은 세이브 규칙을 적용하면 이미 1926년에 20세이브를 기록한 투수(퍼포 마베리)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도 20세이브를 기록한 투수는 70명이나 됐죠. 1960년대에는 205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몇몇 구단에서 세이브 기록을 만들어 선수 고과에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기록이 등장해 경기 내용을 바꿔버린 겁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이브 기준을 만든 건 미국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의 제롬 홀츠먼 기자(1926∼2008)였습니다. 저 역시 기자로서 ‘시대가 바뀌었으니 진짜 위기에서 팀을 구한 투수에게 세이브를 기록하자’고 제안해 봅니다. 그러니까 △등판 순서에 관계없이 △주자나 타자가 득점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등판해 △최소 한 타자를 잡아내고 △리드를 빼앗기지 않았으며 △이닝이 끝날 때까지 자기 책임인 주자 때문에 동점이 되지 않았을 때 세이브를 기록하자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홀드와 세이브를 합치고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러면 진짜 위기 때 팀의 최고 불펜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오리라 보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