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경향신문과 가진 전화인터뷰 녹취록이 그제 공개됐다. 그는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며 “청와대와 이완구(국무총리)가 짝짜꿍해서 (표적수사)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내가 반기문(유엔 사무총장)하고 가까운 건 사실이고, 동생이 우리 회사 있는 것도 사실이고, 우리 (충청)포럼 창립 멤버인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요인이 제일 큰 것 아니냐”라고 했다. 자신이 반 총장 대통령 만들기를 하다가 억울하게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의미일 텐데 사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검찰이 수사한 경남기업의 1조 원대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성 회장은 “현대중공업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SK건설 대림산업도 다 그렇게 떨어냈는데 어째 우리만 이렇게 하느냐”고 강변했다. 경남기업이 15일 상장(上場) 폐지돼 증시에서 퇴출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고 금융권 손실만 1조 원을 넘는다. 그런데도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다 마찬가지인데 운수가 없어 나만 당했다’는 식의 왜곡된 인식을 보인 것이다.
성 회장이 기업을 키운 방식은 건실한 기업인들과는 차이가 있다. 곳곳에서 정경유착의 의혹이 드러난다. 그가 1982년 인수한 대아건설은 중소 건설업체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그런 부실 회사가 워크아웃을 졸업한 바로 다음 해인 2003년 건설업체 도급 순위 20위권의 경남기업을 인수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은 격’이라며 뒷말이 무성했다.
그는 2002년 지방선거 때 출마 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2005년에는 당시 노무현 정부 실세들이 대거 관련된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되어 두 차례 사법 처리됐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005년과 2007년에 특별 사면되는 전례없는 특혜까지 받았다.
권력에 기대어 기업을 키우고 지킨 성 회장이 ‘반기문 대망론’을 주도했다면, 대체 무슨 목적이었을지 궁금하다. ‘손볼 사람’ 리스트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뒤 일각에서 동정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그는 억울한 희생양이라 하기 어렵다. 성 회장은 정치에 줄을 대고 스스로도 정치와 기업을 오가며 정경유착형 사업을 하다가 몰락한 기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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