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로비 의혹이 금융권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수익성이 불투명한 경남기업의 해외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워크아웃 당시 무리하게 자금을 대준 배경에 정권 고위층의 개입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무너져가는 기업 오너의 청탁만으로 금융감독당국의 간부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움직이기 힘든 만큼 정권 핵심 인사들의 압력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 간부 등 관련 인사들은 정권 고위층의 압력이나 성 회장의 청탁, 수뢰 의혹을 부인하거나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상태다.
○ 경남기업과 금융권의 수상한 커넥션
경남기업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2007년 착공한 랜드마크72 빌딩에는 우리은행 등 국내 금융권이 총 5240억 원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지원했다. 사업비 1조2000억 원이 들어간 이 건물은 2011년 완공된 뒤 건설 한류의 상징이 됐다. 유력 정관계 인사들이 성 회장의 초청으로 이곳을 찾았고, 박근혜 대통령도 2013년 베트남 국빈방문 때 이곳에서 열린 패션쇼에 한복을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문제는 이 건물이 분양에 실패해 사업비 회수 가능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금융권이 계속 자금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경남기업은 이미 2009년에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경남기업이 살아야 돈을 건지는 상황이어서 은행들이 워크아웃에도 찬성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성 회장이 정치권과 금융당국을 통해 은행들에 지원을 요구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우리은행 등 금융권의 경남기업 여신은 총 1조3000억 원에 이르며 최근 경남기업의 법정관리가 시작됨에 따라 금융권은 1조 원 가까이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과 경남기업의 관계도 석연치 않다. 신한은행은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을 주도하면서 이영배 전 기업여신관리부장, 김덕기 전 충남영업본부장 등 은행 퇴직 인사들을 경남기업의 사외이사로 보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채권은행 출신 임직원이 워크아웃 기업의 사외이사로 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신한은행이 주채권은행으로 선정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원래 주채권은행은 채권 규모가 가장 큰 수출입은행이었지만 2013년에 갑자기 신한은행으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성 회장의 청탁을 받은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금융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당시 채권단에 속했던 한 은행 관계자는 “주채권은행 변경 과정에서 금융당국과의 ‘조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경남기업과 같은 사례가 흔하진 않다”고 전했다.
○ 윗선의 특혜 지시 의혹 불거져
경남기업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정권 실세가 금융감독원을 통해 채권단에 외압을 행사했는지도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2013년 말 경남기업이 3차 워크아웃에 돌입할 때만 해도 채권단은 “자금 지원을 위해서는 대주주의 무상 감자(減資)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정작 무상 감자 없는 출자전환을 비롯해 6300억 원대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통상 기업 부실이 발생하면 경영 책임을 물어 감자를 통해 대주주 지분을 회수하는 게 관례지만 경남기업에 대해서는 이례적인 조치가 나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금감원 기업금융개선국장으로 기업 워크아웃을 담당한 김진수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채권단에 성 회장의 의견을 받아들이라고 종용한 정황이 감사원 감사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성 회장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금융당국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다.
금융권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은 잘못하면 무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금감원 국장이 단독으로 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더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윗선으로는 성 회장과 같은 충청권 출신인 최수현 전 금감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성 회장은 최 전 원장과 김 전 부원장보를 지난해 1월 만났던 것으로 다이어리에 기록해 놨다. 이 다이어리에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당시 NH금융지주 회장(현 금융위원장) 등의 이름도 나온다.
김 전 부원장보는 가족들에게 “잠시 강원도 처가에 가 있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상태다. 최 전 원장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검찰은 감사원에서 자료를 넘겨받아 관련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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