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9월 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복·아오자이 패션쇼’ 행사를 갖기 직전인 9월 3일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김진수 금융감독원 기업금융개선국장을, 4일과 5일에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만났다고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패션쇼 장소인 베트남의 ‘랜드마크72’는 경남기업이 지은 곳이다. 성 회장은 대통령 행사 직후인 13일 채권은행장인 임종룡 당시 NH농협금융지주 회장(현 금융위원장)과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을 만났고, 경남기업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개시 결정 1주일 뒤인 11월 6일 김 실장을 다시 만나 식사를 했다. 경남기업이 이례적으로 세 번째 워크아웃 혜택을 받게 된 것도 이 같은 ‘만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성완종 게이트’로 기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정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채권단이 주도하지만 사실상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남기업의 전신인 대아건설이 옛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경남기업 인수자로 ‘깜짝 선정’됐을 때도 의혹이 무성했다. 성 회장은 2002년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 캠프에 수억 원의 자금을 건넨 혐의로 2004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합법적인 정치자금 제공”이라는 주장이지만 대아건설이 2002년 워크아웃을 졸업하자마자 덩치 큰 기업을 인수한 것은 석연치 않다.
경남기업처럼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파산을 면하는 기업을 ‘좀비기업’이라고 한다. 로비와 실세의 입김에 휘둘린 정치금융, 관치금융이 좀비기업을 양산하는 주범이다. 이런 기업은 서둘러 정리하고 유망한 새 기업으로 자원이 흘러가게 해야 경제가 활기를 찾는다.
그런데도 정치와 관치의 등쌀에 건설업종의 경우 좀비기업의 비중이 2010년 26.3%에서 2013년 41.4%로 급증했다. 좀비기업의 부실까지 떠안는 바람에 국내 은행의 순익은 2011년 12조 원에서 2013년 4조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좀비기업의 절반만 문 닫게 놔둬도 정상기업의 일자리가 8만 개 늘어난다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채권단을 앞세워 기업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정상적일 순 없다. 정치와 관치의 굴레에서 금융을 놔주지 못하는 정부가 “금융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선 2013년 경남기업에 혈세를 퍼붓는 데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부터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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