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내용이라도 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를 농담조로 가볍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풍자, 패러디 혹은 반전 등 표현의 기교가 활용된다. 이러한 표현에 능한 ‘고수’는 너스레를 떠는 태도에 여유가 넘치고 때론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다루는 내용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나 정치적 비판, 혹은 역사적 사건일 경우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성적 폭력과 인종차별에 관한 실제 역사적 사건을 건드리는 것이라면 어떨까? 더구나 제3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또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가볍고 풍자적 태도를 갖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비록 엄연한 진실이라 할지라도 역사의 치부를 대면하는 일은 불쾌하고 당황스럽다.
케러 워커(Kara Walker)는 이처럼 위험 부담이 큰 작업을 한다. ‘사라지다(Gone·1994년·그림)’에서 보듯, 그는 남북전쟁 시기 미국 남부의 인종과 성을 둘러싼 끔찍한 폭력을 단순한 실루엣 종이 작업으로 다룬다. 미국의 흑인 여류작가라는 태생적 배경은 워커가 만드는 작품과 분리될 수 없다. 그는 북부와 비교할 수 없는 남부의 인종차별과 그 폭력을 단순히 과거의 역사로 넘길 수 없다고 느꼈다.
워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이 그래픽 작업은 ‘한 흑인 여자아이의 검은 허벅지와 심장 사이에 일어난 남북전쟁의 역사적 로맨스’라는 긴 부제를 가진 엄청난 크기(높이 396.2cm, 폭 1524cm)의 작품이다. 이는 검은 종이를 실제 사람의 크기로 잘라 미술관 벽에 붙인 정교한 실루엣 작업이다.
첫눈에 들어오는 단순하고 장식적인 디자인과는 달리 그 내용은 끔찍한 성적 폭력성을 다룬다. 어린 흑인 소녀가 무릎을 꿇은 채 백인 소년의 성기를 구강애무하는 장면, 흑인 소녀가 다리를 들자 두 명의 아기가 떨어지는 장면, 백인 남자가 흑인 하녀의 항문을 핥는 모습 등 강도 높은 ‘19금’이다.
이렇듯 인종차별의 혐오스러운 성적 환상과 잔인한 폭력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미국 남부 농장에서 만연했던 흑인 박해의 불편한 진실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워커는 실루엣이라는 단순하면서 함축적인 시각언어를 통해 대중으로 하여금 미국 사회의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게 하고, 현실의 위선과 외면을 일깨운다. 무섭고도 웃긴 그의 그래픽 이미지는 최소한의 언어로 너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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