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은 올해로 프로 선수 생활 8년째가 되는 투수다. 2007년 말 삼성에 입단해 지난해 한화로 팀을 옮긴 그는 지난해까지 1군 경기에 22번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볼을 던진 이닝은 모두 합해 39와 3분의 2이닝으로 경기당 평균 2이닝도 못 던졌다. 32세가 된 올해도 2군에서 개막을 맞은 그는 동료 투수의 부상으로 개막한 지 보름이 지나서야 1군에 합류했다. 당연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고사하고, 그의 이름이 언론 매체에 실린 적은 거의 없다.
그런 그가 10일 전 인터넷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모든 언론도 그의 이름을 앞다퉈 다뤘다. 졸지에 그는 이승엽 박병호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제치고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화제 선수가 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성적이 아닌 ‘빈볼’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었다. 1군에 합류한 다음 날인 12일 그는 롯데와의 경기에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5회말 그가 등판할 때 한화는 1-11까지 뒤져 승부는 사실상 결정 난 상황이었다. 사달은 그가 4점을 더 내준 뒤 일어났다. 롯데 황재균에게 계속 몸쪽 위협구를 던지던 그는 끝내 황재균을 볼로 맞혔다. ‘투수가 타자를 위협하기 위해 머리를 향해 던지는 투구’라는 빈볼의 사전적 정의와 그의 투구가 다른 점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를 향해 던졌다는 것뿐이었다.
그와 한화 구단 모두 빈볼을 던진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황재균이 야구의 ‘불문율’을 깼기 때문이라는 것이 야구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크게 앞선 팀의 선수는 도루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1회 7-0으로 앞선 상황에서 황재균이 도루를 해 한화 선수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이동걸의 빈볼은 다음 날 불문율 논란으로 확산됐다.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불문율 적용을 위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이 빠졌다. 어떠한 불문율도 프로 스포츠의 주인인 팬들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이 불문율을 적용할 정도의 큰 점수 차였느냐 아니었느냐를 따지는 것은 감독과 선수들의 문제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귀한 시간을 내서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원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다. 그런 팬들에게 점수 차가 벌어진 뒤에는 열심히 뛰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강요하는 것은 스스로 프로이기를 포기한 행태다. 도루도 하면 안 되고 번트도 대면 안 되는 불문율을 지키고 싶으면 입장권을 팔지 않는 친선경기를 하면 된다. 아니면 입장권을 환불해 준 뒤 불문율을 지키면 된다.
프로 스포츠도 최소한의 매너를 지켜야 한다며 불문율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 매너는 빈볼을 던지지 않는 등 한마디로 승리를 위해 치사한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가 여전히 프로답지 못하다는 쓴소리를 듣는 것은 프로라는 생태계를 아직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팬들이 기꺼이 지불하는 돈이다. 하지만 국내 프로구단들은 여전히 주인과 손님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동걸의 빈볼 사태가 그 단면도를 보여줬다. 그런데 프로구단들만 그런 거 같지는 않다. 대통령을 깨우지 않기 위해 국민을 깨운 총리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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