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시의적절하고 진심이 담긴 말은 대인관계의 윤활유다. 배재대학교 유아교육과 취재 때 이를 실감했다. 배재대 하워드기념관 1층 엘리베이터 출입문 앞. 필자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때 저만치 떨어진 곳에 있는 계단을 오르던 두 여학생이 필자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꾸뻑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필자도 얼떨결에 “아…네…안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목적지인 4층으로 가는데 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한번 멈췄다. 이때 탑승한 여학생도 다소곳이 목례를 하며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모두들 공손하게 인사를 하다니….’ 이 궁금증은 유아교육과 학생과의 인터뷰 첫 답변에서 곧바로 풀렸다. 유아교육과 학회장인 배현주 씨(3학년)는 “하워드기념관은 유아교육과 전용 건물이에요. 따라서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유아교육과와 관련된 분들입니다. 그러니 인사드리는 것은 당연하죠.”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러 대학을 탐방했지만 ‘첫 경험’이었다. 이전에도 전용 건물을 사용하는 학과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서로 시선을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외부인’을 훑어보지 않았던가. 아파트의 같은 층 이웃과도 ‘안면 몰수’하는 작금의 팍팍한 세태를 감안하면 배재대 유아교육과는 범상치 않은 학과임에 틀림없다. “이런 인성을 가진 학생(미래의 유아교사)에게 우리의 미래(영유아)를 맡길 수 있다면 안심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난리가 났다.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됐다. 역사적, 사회적, 또는 개인적 경험으로 ‘영유아기(0~8세)가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것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하려면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적 효과로 설명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필요했다.
배재대 이성희 교수(유아교육과 학과장)는 “인간발달 초기인 영유아기 때 교육투자를 하면 그 이후에 투자한 것보다 사회적, 경제적 효과가 7~14배나 더 크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1960년대에 유아교육에 특히 많은 투자를 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영유아보육법 제1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영유아를 건전하게 보육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래 세대인 영유아를 건강하게 길러야 국가의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보육교사의 처우나 사회적 인식이 더 개선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봇의 등장으로 미래사회에는 현재의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아교육분야에서도 로봇을 활용하는 연구와 다양한 콘텐츠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영유아 교육의 핵심인 ‘인간관계’는 결코 로봇이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 중요성은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 교수는 “영유아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교육할 보육교사다. 제아무리 섬세한 휴머노이드도 인간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며 보육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재대 유아교육과는 파란 눈의 선교사 클라라 하워드(한국명 허길래)가 1955년 설립한 60년 전통의 명문학과다. 하워드 선교사는 “너에게 힘이 있을 때까지 이 나라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라”라며 투철한 사명감을 강조했다.
끈끈한 동문 및 지역사회 유관기관 네트워크는 이 학과의 대표적인 강점 중 하나다. 동문 출신 대학교수와 지역 교육청 장학관, 장학사, 각급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 유아교육진흥원 원장 등 관련 분야에 동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또한 지역사회 유관기관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광범위하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취업 정보부터 직접 채용까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학과는 ‘중부권 최대의 유아교육자 양성의 메카’라는 명성에 걸맞게 대규모, 최첨단 유아교육센터를 갖췄다. 하워드기념관에 유아교육과를 비롯해 부속유치원, 부속어린이집, 보육교사 교육원 등이 있어 현장 밀착형 연구-교육-실습이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경쟁력을 인정받아 단독 학과로 신청한 ‘지역밀착형 Educare Plus 유아교육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지난해 교육부 지방대학특성화사업(CK-1)에 선정됐다.
체계적 교육시스템은 유아교사 임용시험에서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2015학년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합격자를 배출했다. 2013년 15명, 2014년 15명, 2015년에 14명 등 최근 3년간 44명이 공립유치원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한 대학 특정학과가 임용시험에서 매년 10명 이상 합격자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2012~2014년까지 3년 연속 대전지역 수석합격자는 배재대 유아교육과 출신이었다.
배재대는 재학생들의 진로개발을 지원하고 다양한 분야의 국가 공무원 및 사회 전문직 진출을 위한 효과적인 수험 준비를 위해 배양영재센터를 운영 중이다. “임용시험에 합격해 국공립 유치원의 훌륭한 유아교사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는 차유빈 씨와 이지원 씨(이상 3학년)는 이구동성으로 “배양영재센터는 전문가 특강 및 무료 인터넷 강의, 선배 초청 면접클리닉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성적이 좋으면 장학금과 기숙사 혜택도 받을 수 있다”며 자랑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성적이면 배재대 유아교육과에 합격할 수 있을까. 2015학년도(정원 54명) 수시(66%) 합격자의 수능 등급은 1.0~2.5까지로 평균 2.0이었고 정시(34%)는 평균 2.8등급이었다. 정시는 국어, 영어, 수학 중 수능 2과목과 탐구영역 1, 2와 제2외국어 중 우수 1과목을 합쳐 3과목으로 성적을 산출했다. 2016학년도에는 수시에서 80%, 정시에서 20%를 선발할 예정이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면 유치원 정교사 2급과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받게 돼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바로 취업할 수 있다. 최근 3년간 평균 취업률은 77%.
전통 있는 학과이기에 장학금은 풍부하다. 특성화사업 장학금까지 지급한 지난해 장학금은 교내 3억2600만 원, 외부(허길래 장학금, 동문회 장학금 등) 5억8400만 원으로 9억1000만 원이었다. 최근 3년간 지급한 장학금만 20억 원이다.
남학생도 유아교육과에 매년 1명 또는 2명씩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유아교육은 여자만 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소신파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 초부터 정부세종청사의 직장어린이집인 ‘아이온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09학번 서동주 씨(25). 서 씨는 “어깨에 손만 올려도 성추행으로 오해받는 요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유아교육과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 씨는 초중고 각급 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필요하듯 당연히 남자 보육교사도 필요하며 충분히 보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린이집이나 학부모 모두 남자교사를 꺼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현재의 직장(아이온 어린이집)은 남자 보육교사를 원했고 나는 기꺼이 지원해 시작부터 정식 담임을 맡았다”며 “매일매일 변화를 느낄 정도로 아이들은 빨리 큰다.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보람이 있다. 현장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그런데 유아교육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북한 유아교육의 실태다. 윤주은 씨(3학년)는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유아 때부터 주입식 단체 사상교육을 하고 있다. 유아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별 특성이 자유롭게 발현되지 못하고 획일화된 틀에 맞춰져 성장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통일이 됐을 때 북한의 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결코 작지 않은 소망을 밝혔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유아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유아들은 자유롭게 놀고 표현하며 그것을 통해 배우고 자란다. 이때 유아들과 함께하는 존재가 바로 유아교사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미래 세대를 맡아줄 유아교육 전문인력에 대한 국가적 요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랑으로 미래의 희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유아교사는 매력적이다. 현장의 유아교사들은 이야기한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아이들로부터 받고 있다고. 그 사랑에 힘입어 힘든 일상이 감사함으로, 보람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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