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운전자가 운전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2013년 국내 운전자 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6%가 ‘나는 안전하게 운전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1명을 크게 웃돈다. 과속이나 급가속·급정거·급출발을 일삼으면서 나쁜 운전습관을 깨닫지 못하는 게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달리 바쁜 일과에도 자신의 운행습관을 기록하며 ‘반칙운전’을 반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전자도 많다. 이들은 ‘완생(完生)’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의 운전기록을 ‘복기(復棋)’하며 나쁜 운전습관을 고치고 있는 ‘미생(未生)’ 운전자다. ○ 착한 운전 만드는 기록의 힘
작곡가 강모 씨(27)는 지난달 구입한 자동차 내부에 노란 메모지를 한가득 붙여 놨다. “신림동 사거리를 지날 땐 불법 주차된 차량이 많으니 속도를 줄이자”, “집 앞 주차장에 차 세우려고 좌회전할 땐 생각보다 10cm가량 더 여유를 둬라” 등의 내용이 적힌 메모지다. 강 씨는 “무거운 악기를 들고 공연하러 가기 위해선 차가 꼭 필요했다. 중고차이지만 몇 년 동안 악기 레슨을 하고 생활비를 아껴 구입한 차인 만큼 좋은 운전습관을 들여 오랫동안 아껴 쓰고 싶다”고 말했다. 강 씨의 이 같은 마음은 육아일기를 쓰며 자신의 실수를 되짚는 초보 엄마의 마음과 같다.
강 씨처럼 초보 운전자가 쓴 ‘운전일기’를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생애 첫 차를 아껴 타기 위한 노력이자 자신의 안전을 위한 반성문이다. 하지만 베테랑 운전자일수록 흔히 ‘나는 사고 한 번 내지 않았다’ ‘차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과신하며 이런 노력을 무시하곤 한다. 이런 착각이 오히려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하곤 한다.
회사원 박준규 씨(52)는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사고가 날 뻔한 14년 전부터 차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2001년 새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리던 박 씨는 한참 만에 타이어에 이상이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당시 박 씨의 운전경력은 8년. 하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고 한다. 박 씨는 “좁은 차로에 차량이 많아 우왕좌왕했다. 동승했던 동료가 안전한 곳에 세우게 안내하고 타이어까지 교체해줘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며 “그때 충격을 받고 차계부를 쓰며 차 구조를 이해하고 좋은 운전습관을 들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박 씨의 차계부에는 연료 주입량부터 엔진오일 등 소모품의 교체 기록, 사고 이력, 연료소비효율(연비), 심지어 세차 기록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차량 정비소와 담당자의 이름, 연락처까지 빠지지 않고 기록돼 있다. 박 씨는 “8년 전 타던 차를 팔 때 구매자에게 차계부를 건네주니 당시 시세보다 100만 원 많이 주고 차를 사더라”며 “차계부만 보면 운전자의 운전습관과 차량 상태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차계부 작성이 일상화돼 있다. 일본은 차계부가 없으면 중고차 거래 시 공식적으로 10%를 감액한다.
○ ‘착한 운전 다이어리’로 돈과 안전을 동시에
본보와 교통안전공단은 운전자가 손쉽게 작성할 수 있는 ‘하루 3분 착한 운전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항목은 ‘반칙운전 진단표’와 ‘오늘의 반성’, ‘주의점’ 등으로 구성된다. ‘반칙운전 진단표’는 교통안전공단이 뽑은 ‘주행 중 절대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 중 운전자가 해당되는 항목에 답한 뒤 총 개수를 세면 된다. 점차 체크하는 항목 수를 줄여 나가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오늘의 반성’에는 운전 중 실수나 교통법규 위반 내용을 자세히 기록한다. ‘주의점’에는 운전하며 주행했던 도로 특성이나 돌발 상황을 기록한다. 이는 도로 정보를 익혀 여유로운 운전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비 관리를 위해 주유할 때마다 주행거리, 연료 주입량, 비용, 주유소 이름 등을 기록하면 자동차의 연비를 확인할 수 있다. L 단위로 주유하면 기록을 통해 연비를 비교하기가 더 쉽다. 자동차 소모품 구매 비용이나 보험료 등 관리비를 함께 적어 두면 전반적인 자동차 관리에 도움이 된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착한 운전 다이어리’ 항목을 조정해도 된다. 급가속을 자주 하는 초보 운전자는 출발할 때 엔진회전수(rpm)가 3000을 넘은 적이 몇 번인지 항목을 따로 만들어 체크해도 좋다. 학부모라면 아이를 안전하게 하차시킬 수 있는 지점과 같은 안전운전 팁을 함께 기록해야 한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운전 경력이 쌓이면 법규를 위반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나쁜 운전습관을 애써 무시한다”며 “반면 기록하는 사람은 안전운행을 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한 달만 하루 3분씩 꾸준히 운전 다이어리를 쓰며 자신의 운전습관을 되돌아보면 어느새 착한 운전습관이 몸에 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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