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호화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는 2012년 질리오 섬 부근에서 좌초해 승객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은 승객을 버려둔 채 탈출했다가 기소됐다. 이탈리아 법원은 올 3월 스케티노 선장에게 징역 16년 1개월을 선고했다. 외신에 따르면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살인(murder)이 아니라 고의성이 없는 과실치사(manslaughter)다.
▷어제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살인죄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이 선장의 행위는 고층빌딩 화재 현장에서 책임자가 먼저 헬기를 타고 탈출하거나 유일한 야간 당직의사가 병원에서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며 이 선장이 탈출 전 승객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1심에서 유기치사상 등 죄목으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던 이 선장의 형량은 무기징역으로 높아졌다.
▷참사가 대형이라도 살인죄가 적용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법률가에 따라서는 ‘1심 판결이 옳다’ ‘항소심 판결이 옳다’ 의견이 갈린다. 1970년 326명이 희생된 남영호 침몰 사고에서 선장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배가 화물 과적이 심하긴 하지만 선장 스스로 그 배에 탔는데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영호는 당시 세 번의 파도를 맞고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져 선장이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없었던 반면 세월호는 사고 후 배가 80도 이상 기울기까지 1시간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우리나라 형법에서 살인죄는 살인죄 하나뿐이다. 독일만 해도 살인을 모살(謀殺·Mord)과 고살(故殺·Totschlag)로 구별한다. 모살은 계획적인 살인을 말하고, 고살은 충동 등 다른 요인이 개입된 우발적인 살인을 말한다. 미국에서 1급 살인과 2급 살인을 구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형법 체계가 현대 사회의 대형 참사를 예방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돼 있다. 애매모호한 미필적 고의를 남용하기보다는 살인죄를 좀더 세분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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