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숙종]중견국 외교와 개발협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0일 03시 00분


중견국 외교 활동 5년… 이젠 회의 소집자 수준 넘어
실질적 기여로 역할 늘릴 시점
한국이 실력 펼칠 수 있는 분야… 군사안보보다 개발협력
정부-민간 힘 모아 적극 나서면 개발협력이 외교의 꽃 될 수 있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
중견국 외교는 지난 정부 이래 추진하고 있는 한국 외교의 주요 목표이다. 국력이 커졌으니 이제는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리더십도 발휘하자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외교 전략이기도 하다. 많은 국제 문제의 해결에서 소수 강대국의 힘보다는 다수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해진 오늘날, 약소국과는 달리 투입할 자원이 있고 강대국보다는 협력의 동기가 강한 중견국의 역할이 주목받는다. 과거 중견국 외교는 주로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추진되었다. 그런데 유럽 통합의 심화로 이들이 역내 문제에 몰입하면서 주춤해진 글로벌 중견국 외교를 한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우리와 비슷한 중견국인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와 함께 참여 국명의 첫 글자를 딴 MIKTA 네트워크를 2013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중견국의 역할에는 이해당사자들을 모으는 소집자, 소통과 협력의 촉진자, 이해 상충의 조정자, 갈등의 중재자, 논의 과제를 발굴하는 의제설정자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한국은 지난 5년간 주요 20개국(G20), 핵안보정상회의, 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 물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회의를 주관하는 소집자의 역할에 주력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국제회의의 나라라 불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집자 수준을 넘어 국제 문제의 해결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등 중견국 외교의 내실을 기할 시점에 왔다.

그렇다면 어떤 영역에서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군사안보 영역은 한미동맹에 근간을 두고 있는 한국이 나서기에는 민감한 만큼 자연재해나 질병 확산에 대응하는 인간안보 분야가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에볼라가 확산될 때 비록 소수이긴 하나 민·군 구호대를 서아프리카에 파견하여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보다 상시적으로 한국이 주도해 중견국 외교를 잘 펼칠 수 있는 분야는 뭐니 뭐니 해도 개발협력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009년 말 가입하면서 원조액을 점차 늘려 현재 약 1조3000억 원의 유무상 원조를 하고 있다. 원조 총액이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선진 공여국들의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전환한 놀라운 스토리로 중견국 역할을 할 좋은 위치에 있다. 한국은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뿐 아니라 전통적 원조 공여국과 신흥 공여국 사이에서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시험해 본 것이 2011년 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였다. 한국은 단순히 소집자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원조효과성 중시 논의에 개발 효과의 중요성을 접목하고 중국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조정자와 촉진자의 역할까지 해내었다.

그러나 개발협력 분야에서 중견국 외교를 충실히 가동하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가령 한국의 무상원조의 경우 분야별로 구체적 목표, 실행 원칙, 성과 평가 등 체계를 보다 면밀히 갖춰야 한다. 원조의 비전과 규범을 정립하는 데서도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데 너무 집착하기보다는 글로벌 원조 거버넌스의 축적된 경험과 개혁 방향을 찬찬히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눈여겨볼 것은 올 9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지난 15년간의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대체할 ‘포스트 2015’ 개발협력이 어떻게 정립되느냐이다.

작년 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종합보고서 ‘2030년까지 존엄을 향한 길’은 존엄, 인간, 번영, 지구, 정의, 파트너십 등 6가지 요인의 통합을 강조한 바 있다. 제시된 예비 의제들은 MDGs에서 추진되었던 빈곤문제와 보건 등의 기본권을 넘어서 형평성 있는 교육, 포용적 성장 등 다양한 목표를 담고 있다. 한국의 발전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공헌할 기회가 많아 보인다. 또한 투명한 자료의 공유 및 참여적 모니터링을 강조하고 있어 한국 시민단체들이 기여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 월드프렌즈 KOICA(코이카) 봉사단 같은 한국 청년들의 해외 봉사는 개발협력에 대한 후속 세대의 헌신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좁은 국내 노동시장에서 분투하는 청년들의 국제화도 돕는다. 정부와 민간이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실행력으로 함께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개발협력은 우리 중견국 외교의 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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