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재·보선은 흔히 ‘여당의 무덤’으로 일컬어진다. 노무현 정부 때는 물론이고 김대중, 이명박 정부 때도 어느 정도 적중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딴판이다. 4차례 재·보선 모두, 그것도 24곳 중 18곳에서 승리했다. 야당은 매번 ‘정권 심판’을 외쳤지만 표심은 도리어 야당을 심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어제 4·29 재·보선 전패(全敗)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경제실패, 인사실패, 부정부패에 분노한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참으로 송구하다”고 말했다. “제가 부족했다”면서도 ‘환골탈태’ 같은 판에 박은 다짐조차 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이 문 대표 책임론과 사퇴까지 거론했지만 들은 척도 안 한 건 물론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선거 결과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 여당에 ‘경고’까지 날렸다. 작년 7·30 재·보선에서 11 대 4로 패배한 뒤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물러난 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다.
당내에서는 이번 참패를 ‘친노계에 대한 핵심 지지층의 분노의 표시’로 해석하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 문 대표가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해 호남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쟁 일변도 친노 강경파의 정치야말로 보통 국민들이 넌더리를 내는 행태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엉뚱하게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더 치열하게 투쟁하지 못한 것을 패인으로 꼽은 것이다. 야당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할 때마다 흔히 표현하는 ‘유체이탈식 화법’이 따로 없다.
새정치연합은 각종 선거에서 질 때마다 패인 분석 보고서를 내지만 제대로 실천한 적이 없다. 국민이 새정치연합에 절실히 바라는 것은 유능한 ‘투쟁 정당’이 아니라 유능한 ‘대안 정당’이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초기의 ‘유능한 경제정당론’을 버리고 상투적 구호인 정권 심판론을 줄곧 외쳐댔다. 당내 중진조차 “대표가 정치를 혐오하게 하는 일에만 공을 쏟았다”고 했을 정도다.
지금 많은 국민은 새정치연합이 과연 수권정당의 능력이 있는지, 장차 국정을 맡겨도 괜찮은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아무리 패해도 당이 달라질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의원들부터 금배지를 달 수만 있다면 당이 몇 석을 얻든, 집권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자세인 것이 국민에게도 보인다. 하지만 문 대표는 국민의 눈이 아니라 당내 기득권 세력인 친노의 눈으로 당과 세상을 재단하고 있는 것 같다. 패장(敗將)이 패인을 모르는 정당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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