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키 작아도 운동 못해도… 직업 가진 내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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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7>두 번 우는 경단녀들

아이 둘을 키우며 경력 단절의 위기를 겪고 있는 김모 씨(43)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결국 그날도 죄책감만 안은 채 집에 돌아왔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내 아들 준서(가명) 얘기다. 준서는 어려서부터 좀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도 밖에 나가 놀지 않는 유일한 아이였다. 체구도 작고 운동신경도 떨어지고…. 혹시 왕따 기질이 있는 건 아닐까. 부랴부랴 선생님을 찾아갔다. 아이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자 선생님이 물었다.

“준서가 몇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어요?”

“두 돌 때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런 ‘부류’의 상담에 매우 익숙하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라면서 엄마의 손길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어요. 실례지만 어머님 직장이…?”

난 프리랜서 번역가다. 또 여섯 살, 여덟 살 난 두 아이의 엄마다. 주위 사람들은 “그래도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면서 나를 남들보다는 한결 사정이 나은 워킹맘으로 본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그래도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걱정이 돼서 재택근무 여성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댓글이 꽤 많이 달렸다. 그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일을 쉬지 마세요.” “일감이 끊기면 안 되니 업계와 ‘연줄’을 반드시 유지해야 해요.” 그 비장한 조언들이 그땐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못 했다.

준서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는 마치 ‘절대자의 강림’과도 같았다. 내 모든 시간을 지배하며 정력을 남김없이 앗아갔다. 준서가 매일 밤 10분에 한 번씩 잠을 깨고 수차례 똥을 옷에 지리는 상황에서 번역이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애를 잠시도 내려놓을 수가 없어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굶고 있는 날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1년이 가고 준서 돌이 지났을 때, 운 좋게도 작업 기간이 넉넉한 원고 의뢰를 받았다. 하지만 친정에 일주일에 두어 번, 그것도 두세 시간씩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니 그 속도는 너무나 느릴 수밖에 없었다. 출판사에 사정해서 마감을 두세 번이나 미루며 간신히 책 한 권을 끝냈다.

준서가 어린이집에 들어가자 곧 둘째를 출산했다. 더 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육아와 살림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한 채 1년 넘게 보낸 뒤 나는 깨달았다. 그때 인터넷 카페에서 본 심각한 댓글들의 의미를….

여러 선배 맘들의 조언대로 경력을 유지하는 데 안간힘을 썼지만 업계에서 나의 존재는 잊혀져 갔다. 우선 번역 의뢰가 눈에 띄게 줄었다. 급한 원고는 “육아 때문에 못 하겠다”고 거절하고, 그나마 받아오는 일도 마감을 못 지키는 일이 태반인 번역가를 좋아할 리 없었다. 오히려 그 정도라도 일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주위에서 내 경력 단절을 조금이라도 걱정해 주는 건 남편, 그리고 같은 처지의 워킹맘 친구 몇몇밖에는 없었다. 명절 때 뵙는 친척 어른들, 동네 아주머니들, 어린이집이나 학교 선생님 등 주변의 많은 이들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에겐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내 직업 탓으로 돌렸다. “엄마가 일하느라 못 챙겨 먹여서 애 키가 안 크는 것 아닐까.” “너무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니 사회성이 떨어지는 게지.” 이제는 그런 ‘충고’들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아이도, 일도, 뭐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과 좌절감에 여전히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큰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뒤 의욕적으로 일터에 복귀했지만 아직도 난 ‘경단녀’ 처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성에 안 차서 거절했을 만한 일감도 기꺼이 하고 있다. 주변에선 “준서를 방과후학교에 보내지 말고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지만 그러면 난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걸 뻔히 알고 있다. 그래서 준서에게도 좋고, 나도 내 일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다.

일단 준서에게 축구와 수영을 가르쳤더니 이전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게 됐다. 어느 날에는 엄마가 번역한 책을 준서가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면서 내 죄책감도 누그러질 수 있었다. 현실이 불안하고 힘들어도 이런 삶이 결국 아이와 엄마에게 모두 좋지 않을까. 워킹맘들은 이런 희망으로 산다.

■ 워킹맘은 잠재적 경단녀?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가 외줄타기처럼 위태롭습니다. 사표를 마음속에 품고 다닙니다. 어떻게든 오늘도, 또 내일도 버텨 보는 겁니다.” 김모 씨(41·회사원·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의 엄마)

“공공기관에 다니다가 육아를 위해 탄력근무를 신청했는데 상사가 눈치를 줘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이직을 하려고 면접을 보다 보면 추가 자녀 계획을 묻는 곳도 있더라고요. 애를 더 낳을거면 떨어뜨리겠다는 뜻이죠.” 이모 씨(36·회사원·네 살짜리 아이의 엄마)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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