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과 공무원단체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재정 절감액 중 일부를 공적연금 강화에 투입하기로 합의했지만 현행 국민연금법 체계에선 재정에서 국민연금 지급을 직접 지원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제한적인 지원만 가능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여야 합의대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높이려면 국민적 저항을 감수하고 연금보험료를 크게 높이거나, 그동안의 원칙을 깨고 재정을 통한 국민연금 지원에 나서야 하는 ‘외통수’에 걸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현행 체계에선 연금 재정 지원 불가
정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식과 관련해 △연금 보험료 및 소득대체율 동시 인상 △소득대체율만 높이되 인상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국민이 내는 보험료인 적립금과 이를 투자한 결과인 운영수익을 통해 노령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 등의 형태로 지급하는 구조다. 재정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을 더 많이 지급하려면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한꺼번에 높이는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연금보험료 상승 폭만큼 가계의 소비여력이 줄어 가뜩이나 부진한 경기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연금 지급에 필요한 재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재원 확보 방안 없이 소득대체율을 높여 지급액만 늘리기는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기조에 동의하되 보험료율 인상을 포함한 재원 확보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연금액 인상 시기를 미루는 정치적 타협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서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아낀 돈 중 일부를 국민연금 지급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카드는 정부가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어 후폭풍이 더 클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공무원연금법에 연금급여 지급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급을 보장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재정 지원의 근거를 법제화하면 이 자체가 지급 보장으로 확대 해석될 여지가 있다.
○ “재정부담 잠깐 동안 더는 미봉책”
기재부는 재정에서 돈을 끌어다 국민연금 급여 지급에 활용하는 적극적 지원 방식 대신 ‘두루누리 사업’, ‘크레디트 제도’ 등 저소득층이나 일시적으로 국민연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도의 틀을 유지하면서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정치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제도 개편이라는 전혀 다른 사안을 연결짓고 있어 당혹스럽다”며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수준의 정책 정도가 다른 부작용 없이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번 여야 합의를 두고 전형적인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현재 공무원연금 재정이 너무 부실해 지출을 줄이자는 것이 논의의 본질인데 마치 남는 돈이 있는 것처럼 논의가 진행됐다”며 “나중에 공무원연금 적자가 더 심해지면 국민연금에서 돈을 대라고 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재정건전성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실패한 개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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