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만 개의 점포가 있고 33만여 명의 상인들이 매일 땀 흘리며 일하는 전통시장은 우리의 삶과 역사가 함축된 소중한 문화자원이다. 영화 ‘국제시장’이나 ‘수상한 그녀’에서 보듯이 전쟁 등으로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기회를 마련한 곳이다. 서민들의 애환과 희망이 어우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 ‘재래시장’이라 불리던 시절의 전통시장은 지저분하고 불친절하다는 이미지 탓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었고, 상인들의 생계도 위협받았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전통시장 살리기 정책을 시행해 왔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의 급팽창과 소비자 구매행태의 변화 속에서 고전했다. 전통시장이 대부분 인구가 줄어드는 구도심에 있는데 비해, 대형마트나 대기업슈퍼마켓(SSM)은 신시가지나 역세권으로 진출하면서 상대적인 격차가 커지게 됐다. 전반적인 매출 감소로 일부에서 정부의 지원정책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변화를 보면 긍정적인 성과를 알 수 있다.
전통시장의 매출 감소세는 2011년 7.9%에서 2013년 1.3%로 둔화됐다. 특히 정부에서 지원한 시장은 최근 5년간 평균 매출액이 8.4%가 늘어났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상품에 접목한 정선 아리랑시장, 장흥삼합이라는 대표상품을 시장브랜드로 개발한 장흥토요시장, 문화예술인과 협업하여 지역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광주 대인시장 등 성공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의 가게를 이어 받거나 시장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 상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제 전통시장은 도와준다는 관점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관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전통시장은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서민들의 일자리 터전을 마련해 줬다. 2005년 27만4000명인 시장 상인이 2014년 현재 33만4000명으로 늘어 우리 사회의 고용 안정망 역할을 했다. 또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수축산물과 특산품, 공산품 등을 주로 거래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급속한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맛과 멋, 문화가 어우러진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정부는 그간 비가림막 설치, 주차장 조성 등 전통시장의 시설현대화에 집중했으며 2015년부터는 전통시장의 입지, 역량 등에 따라 고유의 특성을 살리는 시장 육성사업을 시작했다. 도심과 주택가의 ‘골목형 시장’은 1시장 1특색을 개발해 육성하고, ‘문화관광형 시장’은 지역의 문화 관광 특산품과 연계해 관광과 쇼핑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글로벌 명품시장’은 한국적 문화와 시장을 융합해 세계적 관광명소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런 정부의 지원 노력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려면 시장상인들이 합심하여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정부는 스스로 변화하고 노력하는 시장에 정책역량을 집중해 서민들의 소중한 일터이자, 문화적 공간인 전통시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지역 사회에 튼튼하게 뿌리내리도록 돕고자 한다. 화창한 오월, 주변의 전통시장을 찾아 맛과 멋도 즐기고 쇼핑도 하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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