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질의 전당’ 된 입법권력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2일 03시 00분


의원들 권한 남용 견제장치 없어… 민원 폭주에 국가철도계획 표류
정부 권한인 시행령 제정도 개입… 막말-졸속입법 등 자질논란 계속

국토교통부 국장 A 씨는 최근 한 달 새 여야 국회의원 100여 명을 만났다. 의정보고서용으로 ‘금배지’들과 찍은 사진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이 간부의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올해 말까지 정부가 성안해야 하는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 때문이다.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생색내기 사진에 A 씨의 얼굴이 필요했던 것이다.

새로 반영될 수 있는 사업 예산은 30조 원에 불과한데도 몰려든 의원들의 ‘민원 예산’만 벌써 120조 원을 넘겼다. 정부는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 발표를 아예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넘기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슈퍼 갑(甲)’ 국회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나온 고육책이다.

입법권은 종종 삼권분립의 정신을 무너뜨린다. 본래 시행령 제정은 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관련 특별법 시행령 제정에 국회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시행령을 법령으로 승격해 바꾸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상옥 대법관이 인준되기 전까지 대법관 공백 사태는 78일 동안 지속됐다. 대법관 공백사태는 안중에도 없는 몽니로 정쟁만 일삼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당 지도부 일원의 ‘막말’은 언어 공해 수준이다. 이미 만연한 입법 권력의 폭주를 보여 주는 사례다.

대의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을 팽개치고 여야 합의에만 매달리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야의 ‘야합’ 구조는 일상화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6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요구가 국회 규칙에 명기되지 않을 경우 민생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국회선진화법을 볼모로 한 입법 횡포라는 지적이 많다.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 야당 추천 위원인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여야 합의 당시 “한국 사회가 의원내각제로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의회 권한이 강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동아일보는 ‘제왕적’ 국회의원의 입법권 남용 실태와 그 구조적인 원인을 집중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입법 권력이 스스로 자정 작용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무총리나 장관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에 대해서는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 정당별 공천 심사 단계에서부터 자질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시민단체와 유권자들도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권력 감시와 선거를 통한 국회의원 심판 역할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혜림 beh@donga.com·홍수영 기자
#입법권력#국회#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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