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남겼다고? 먹칠을 했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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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주제는 ‘문화예절’]<91>문화재 낙서 몸살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전북 김제시 금산사 미륵전 측면 외벽이 온갖 낙서들로 훼손돼 있다. 김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전북 김제시 금산사 미륵전 측면 외벽이 온갖 낙서들로 훼손돼 있다. 김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피지 안했고/막걸릿집 여자의/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전북 고창군의 천년 고찰 선운사를 소재로 한 미당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다. 동백숲길 등 자연미가 빼어난 곳이지만 15일 기자가 찾은 선운사는 관광객들이 남긴 갖가지 낙서들로 얼룩져 있었다.

보물 290호로 지정된 선운사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건물 뒤편엔 부끄러운 ‘흉터’가 가득했다. ‘2013. 4. 28 영미, 수정, 소라, 경진’처럼 왔다 간 흔적을 남긴 것부터 ‘혜정♡철재’라고 애정을 과시한 것까지 낙서의 종류는 다양했다. 심지어 ‘ㅋㅋㅋ 문화재에 낙서’라며 자신의 행동을 되레 자랑한 것도 있었다.

흙벽에 새겨진 낙서들을 본 관람객 김모 씨(57)는 “조용한 산사를 찾은 시민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고 간다니 부끄럽고 기가 막힌다”라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낙서를 남기는 건 한순간이지만 지우는 일은 쉽지 않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를 수리하기 위해선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문화재청장의 허가가 나야 흙벽을 덧씌우거나 도색을 새로 할 수 있다. 허가가 나기 전까지는 벽에 가득한 낙서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낙서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큰돈을 들여 보존사업에 나선 곳도 있다. 전북 김제시 금산사는 5년 전부터 33억 원을 들여 국보 62호인 미륵전의 벽화 보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17세기 중건된 미륵전은 국내에 유일한 3층 불전이지만 외벽의 풍화와 더불어 낙서로 인한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사찰 관계자는 “언제 새겨졌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낙서가 많다”며 “낙서를 하지 못하도록 펜스를 설치하자는 논의를 하다 김제시에서 보존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고 올해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지정문화재에 낙서를 하다 적발되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고창·김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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