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장관에서 총리로 직행한 첫 사례다. 유례가 없는 ‘고속 승진’에서 볼 수 있듯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그만큼 두텁다. ‘과묵하고 단호한’ 업무 스타일은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 내면서 박 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 대통령은 황 후보자를 내세워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다시 한번 강하게 내보였다. 정치 개혁으로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다.
○ 인사 때마다 하마평에 오른 황 후보자
이완구 전 총리가 지난달 21일 사의를 표명하자 황 후보자는 일찌감치 후임 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다. 법무부에서는 “후임 장관을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황 후보자는 이번 총리 인선뿐 아니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후임으로도 거론됐다. 여권에서 황 후보자는 박 대통령에게 확실하게 신임을 받는 ‘박근혜의 남자’로 통했다.
하지만 오히려 ‘젊은 나이(58세)’가 문제였다. 김 전 실장 후임으로 거론됐을 때는 최고령 수석인 현정택 정책조정수석(66)보다 8세나 어린 점이 ‘단점’으로 꼽혔다. 이번 총리 인선 때도 황우여 사회부총리(68)나 최경환 경제부총리(60)보다 어린 데다 부총리도 아닌 장관이 바로 총리로 발탁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전망’도 있었다.
특히 여권에선 황 후보자의 ‘보수적 성향’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었다. 검찰 내 대표적 ‘공안통’인 황 후보자를 내세우면 공무원연금 개혁 무산으로 가뜩이나 경색된 여야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에서 황 후보자를 두고 “포용력이나 정치력, 융통성이 부족한 원리주의자” “독일병정 스타일”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호남 총리론’을 주장하며 ‘화합형 인사’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부정부패 척결로 정국 정면 돌파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러 부정적 요인을 뒤로하고 황 후보자를 ‘깜짝 발탁’했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라고 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은 강조했다. 황 후보자를 내세워 ‘부정부패 척결’ 드라이브를 한층 강하게 걸겠다는 의미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완구 전 총리가 역설적으로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돼 낙마하면서 박 대통령의 집권 중반기 구상은 어그러졌다.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여 정권의 성과를 만들 시기에 다시 인사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부패 척결을 또 하나의 국정 목표로 내세워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성완종 게이트’의 본질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정경 유착”이라며 “이를 끊지 못하면 경제 활성화도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당시 이뤄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두 차례 ‘특혜 사면’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여야 정치권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타협하기보다 부패 척결로 차별화해 국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야 모두 자유롭지 않은 부패와 비리 사슬을 파헤쳐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적임자가 황 후보자라고 본 것이다.
국정의 안정성을 위해 ‘장수 총리’를 택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는 2010년 10월부터 2년 4개월간 재임한 김황식 전 총리다. 황 후보자가 다음 달 총리에 취임해 박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한다면 김 전 총리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다. 황 후보자가 최장수 법무부 장관에 이어 최장수 총리의 기록까지 갈아 치울지 주목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