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벌어진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분열정치’에 대한 여진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당직자는 25일 “노건호 씨의 독설과 비노(비노무현) 인사에 대한 물세례는 당내 갈등의 숨은 불씨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길 전 공동대표를 비롯한 비노 진영이 봉하마을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당을 깨자고 나서지는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당의 원심력을 강화시킬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친노의 좌장인 문재인 대표가 보여주는 리더십 부재는 제1야당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유감 표명 없는 文 대표
새정치연합 수도권 초선 의원은 이날 “왜 문 대표가 물벼락과 야유를 받은 김한길 전 대표와 천정배, 박지원 의원에 대한 유감 표시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비노 진영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의 독설에 대해 “다 적절하고 필요한 말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추도식에 온 손님에 대한 예의는 종합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노 씨의 당일 발언에 친노의 입김이 가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 상황이지만 문 대표는 추도식의 분열정치 양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6주기 행사가 열렸던 23일 “친노 비노로, 노무현의 이름을 앞에 두고 분열하는 모습이 부끄럽다”고 했을 뿐이다.
당 대표로서의 존재감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정청래 최고의원의 ‘공갈막말’ 사태 당시를 상기시키며 “이번에도 수습을 못하고 있다. 아니 수습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쓴소리를 했다.
친노 진영은 공식 반응을 자제했지만 개별 인사들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전해철 의원은 트위터에서 “노건호 씨 발언은 있지도 않은 NLL 포기 발언 등으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대선에 악용한 분이 어떠한 반성, 사과 없이 추도식에 참석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했다. 최민희 의원도 “종편들이 ‘노건호 발언’을 갖고 야당 흔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썼다. ○ 미래가치 논쟁은 보이지 않아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이처럼 진영논리에만 파묻혀 계파끼리 치고받기만 계속하다가는 공멸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총선, 대선 모두 패하고 말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번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전야제에서 벌어진 문 대표에 대한 싸늘한 호남 민심이나,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일어난 친노 세력의 비노 진영에 대한 비토(veto·거부)는 당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있다. 가치나 노선의 충돌이 아니라 ‘호남패권주의’와 ‘친노패권주의’의 충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데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재야·시민단체 세력 또는 소위 진보정당과의 선거용 합종연횡만 있었을 뿐 가치와 노선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합의는 없었던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486세력을 비롯한 50대 정치인들도 새로운 비전이나 기치를 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이나 미국 민주당 빌 클린턴의 ‘뉴민주당’이 아예 나올 수 없는 토양이라는 자탄이 나오는 이유다.
○ DJ-노무현 이름만 붙잡아
새로운 노선을 두고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이름만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의원들은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이라는 DJ의 격언이나 ‘지역구도 타파’라는 노 전 대통령의 숙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말로서 끝이고, 이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자신만의 미래비전을 만들어내는 정치인은 드물다는 평가가 많다.
문 대표는 22일 페이스북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제발 분열의 수단으로 삼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이제 편하게 놔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진보 성향의 작가 고종석 씨는 트위터에 “문 대표의 말대로 이제 그분을 놓아드리자. 그런데 그 발화자가 문 대표라는 게 어이없다. 고인을 악착같이 붙들고”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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