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한 영화를 뻔한 영화 만드는 한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7일 03시 00분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5월의 주제는 ‘문화예절’]<97>영화-드라마 김빼는 스포일러

영화 ‘어벤져스’ 개봉을 고대하던 직장인 전도영 씨(24·여)는 지난달 무심코 관련 온라인 기사를 읽고는 영화 관람을 포기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에 특정 인물이 죽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 씨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데 돈 주고 영화를 볼 생각이 들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영화, 책, TV프로그램 등의 리뷰가 활성화되면서 중요한 결말, 반전 등을 미리 말해 산통을 깨는 ‘스포일러(Spoiler·줄거리를 미리 알려줘 재미를 떨어뜨리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가면을 쓴 채 노래한 이를 맞히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노래 실력을 감상하기보다 그 가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를 맞히는 데 누리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참가자의 목소리, 체형은 물론이고 손 모양까지 포착해가며 실제 참가자가 누구인지 분석하는 글이 줄지어 올라오면서 시청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정답에 가까운 댓글을 본 한 시청자는 “다음 주 방송을 기다리고 있는데 김샜다”며 추측성 스포일러를 나무라는 댓글로 맞받았다.

스포일러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다 보니 온라인상에서는 일명 ‘스포충’(스포일러와 벌레를 뜻하는 ‘충’을 합침)이라는 신조어가 통용될 정도다. 스포충은 게시글의 제목에 ‘스포일러 주의’라는 경고 문구를 달지 않은 채 영화, 드라마 등의 내용을 미리 말하는 누리꾼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영화 곧 볼 테니 스포하지 마세요”라는 댓글에 작심한 듯 영화의 결말을 댓글로 달 정도다.

콘텐츠 제작사들은 스포일러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실제로 이달 중순 영화 ‘악의 연대기’를 선보인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예고편 앞에 출연 배우들이 등장해 “영화 속 반전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짤막한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안숭범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기를 과시하려는 욕구가 빚어낸 현상”이라며 “타인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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