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수업받는 야구꿈나무 “프로 진출 못하면 변호사가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야구 천국’ 문경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 학생들 만나보니

13일 경북 문경시에 있는 글로벌선진학교 문경캠퍼스에서 권혁돈 감독(뒷줄 왼쪽)과 야구부 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서울 신일중, 세계사이버대 등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권 감독은 “세계 최고의 중학 야구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문경=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3일 경북 문경시에 있는 글로벌선진학교 문경캠퍼스에서 권혁돈 감독(뒷줄 왼쪽)과 야구부 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서울 신일중, 세계사이버대 등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권 감독은 “세계 최고의 중학 야구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문경=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글로벌선진학교는 야구 천국(heaven)을 꿈꾸는 야구 피난처(haven)다. 이 학교 야구부에서는 야구 때문에 상처 받은 영혼이 야구 덕에 희망을 되찾는다. 이 학교 권혁돈 감독은 “우리는 프로야구 선수와 야구 전문 변호사를 동시에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경북 문경시청에서 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이 학교 문경캠퍼스가 눈에 들어온다. 주차를 마치자 야구부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다가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5월 초순의 청보리처럼 파릇한 목소리였다. “무엇이 그리 신나느냐”는 질문에 “야구하러 가니까요” 하는 답이 돌아왔다.

원래부터 이 친구들이 이렇게 밝았던 건 아니다. 정하성 군(7학년·포수)은 야구는 좋았지만 야구부 생활은 싫었다. 정 군은 예전 야구부 생활을 떠올리며 “지옥이었다. 욕먹고 맞는 게 너무 싫어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 아버지 아는 분의 소개로 이 학교를 알게 됐다. 지금은 완전 천국에 산다”고 말했다. 이 학교 차기훈 코치는 “우리 코치들은 선수들을 웃겨주는 게 임무”라며 웃었다.

이 학교 야구부원들에게는 공부도 ‘즐거운 의무’다. 박지산 군(9학년·외야수)은 “예전에는 프로 선수가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안돼 불안했다. 이제는 훈련이 끝나는 오후 7시부터는 숙제 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숙제를 못하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학교 야구부원들은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2시 반까지 정규 수업을 모두 듣는다. 심지어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기독교 재단에서 세운 이 6년제 기숙형 학교의 졸업생 중에는 해외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이 많다. 커리큘럼도 미국식이다. 이 때문에 중학교 1학년이 아니라 7학년처럼 학년을 구분한다. 단, 교육부에서 정식 인가를 받은 학교이기 때문에 졸업하면 국내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야구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1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지원을 받아 창단한 이 학교 야구부(중등부)는 2013년 전국 대회인 KBO 총재배 유소년 야구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야구부원들의 장래 희망 역시 당연히 프로야구 선수다. 지난해에는 중등부 학생들이 진학하면서 고등부 팀도 생겼다.

권 감독은 “아무래도 고등부는 야구만 하는 다른 학교를 따라가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야구 선수로 한계를 느끼고도 할 줄 아는 게 야구뿐이라 계속 고집을 못 버리는 일은 없다. 다른 학교 야구부로 전학 가고 싶다면 그 길도 열려 있다”며 “감독을 맡고 있는 동안 야구로 미국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을 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학교 야구부가 뿌리내리는 데는 허구연 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의 공이 컸다. 그는 야구부 창단을 물밑 지원한 건 물론이고 4대강 사업으로 생긴 학교 인근 낙동강변 터에 백포야구장 건설을 주도해 이 학교 선수들의 ‘안방 구장’도 마련해줬다. 그 전까지 이 학교 학생들은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경북 예천군까지 야구장을 찾아가야 했다.

허 위원장은 “우리는 엘리트 선수는 공부를 너무 안 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운동을 너무 안 해 문제”라며 “이 학교는 야구뿐만 아니라 한국 체육 교육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정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문경=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영어#야구꿈나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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