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노동계가 장기적인 이익, 큰 이익을 봐야 한다”며 “임금피크제를 반대하면 단기적인 이익은 있을 수 있으나, 근로자 전체의 고용 안정이라는 장기적인 이익은 없다”고 말했다. 전날 임금피크제를 다루는 공청회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저지로 무산된 것을 비판하면서 꺼낸 말이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청년들의 ‘고용 절벽’은 더 심해질 공산이 크다. ‘고용 절벽’이란 기업들의 고용 능력이 급감해 일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정부는 정년만 연장되고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을 경우 청년 실업률이 현재의 10% 수준에서 16%로 오르고, 청년 실업자가 45만 명에서 73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3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13.4%에 불과하다. 다급해진 정부가 노동계와 민간 기업에 임금피크제 독촉에 나섰다.
그러나 국가적인 과제인 노동시장 개혁을 하려면 공무원들이 모범을 보여야 맞다. 6급 이하 공무원들의 정년은 57세였으나 2008년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 단계적으로 연장돼 2013년부터 60세 정년이 됐다. 공무원들의 임금 체계는 놔두고 정년만 늘려 놓고는 이제 와서 민간 기업과 공기업에만 임금피크제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정부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의 후속 대책으로 공무원 정년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최근 “공무원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이 늦춰져 소득 공백기가 발생한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무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60세부터 임금을 10%씩 깎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개혁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울 정도의 연금 개정을 해놓고도 ‘정년 추가 연장’이라는 선물을 공무원들에게 안겨 주려고 한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늘어난다지만 민간 기업에 다니는 근로자들은 명예퇴직 등으로 40, 50대에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다반사다. 공무원들은 앞서 정년 60세의 혜택을 누린 것도 모자라 퇴직 후에도 산하 공공기관이나 관련 업체에 낙하산으로 내려간다. 이런 마당에 정년을 더 늘린다면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정부가 먼저 공무원들의 임금피크제를 실시해야 민간 기업을 설득할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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