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부 시행령에 국회가 수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원안 그대로 정부에 이송될 경우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입법부와의 전쟁 선포’라며 반발했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국회 운영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여서 실제로 국정이 마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에 매몰돼 심사숙고 없이 국회법 개정에 담합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여야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과 뜻이 다를 수가 없다”고 말해 일단 재협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여당의 뜻을 하나로 모으고 야당을 설득해 재협의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행정부의 시행령이 법에 저촉될 경우 국회가 수정 요구를 하는 것을 국회의 권리처럼 말하지만 억지다. ‘요구’라는 법률 용어가 갖는 의미에 비춰볼 때 수정 요구는 강제성을 띤 것이고, 행정부에 독자적인 행정입법권을 부여한 헌법에 위배된다. 행정입법권이 법률의 위임에 따라 행사되는 것이라도 국회가 수정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이 행정부에 부여한 재량권을 빼앗는 행위다. 헌법상 사법부 권한인 행정입법의 위법 심사권을 국회가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회는 국정감사, 국정조사, 탄핵소추권 등을 비롯해 이미 행정부에 대한 다양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 행정입법도 법률의 제정과 개정을 통해 통제가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국회가 행정입법을 고치라고 명령까지 하겠다는 것은 행정부를 국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하부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사실상 내각제 개헌을 한 것과 다름없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새정치연합은 벌써부터 ‘나쁜 시행령(규칙)’ 11건을 발표하는 등 국회법 개정안을 근거로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시행령을 전부 손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여야 합의가 돼야 수정 요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야당 뜻대로만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국회선진화법을 등에 업고 툭 하면 법안 발목 잡기와 연계투쟁을 벌여 온 야당의 행태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가. ‘제2의 국회선진화법’이 될 분란의 소지를 미리 확실하게 도려내지 않는다면 식물국회에 더해 식물정부가 되는 것도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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