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6월 해상 교전중 피랍된 도종무 중사
형 도형수씨 “정부, 국군포로 송환 나서야”
“동생이 아직 북한에서 살아 있는지 생사라도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평생 동생을 그리워하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형수 씨(74)는 매년 현충일 전날인 6월 5일이 되면 동생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1970년 이날 도 씨의 동생 도종무 중사(당시 24세·사진)가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피랍된 뒤 아직까지 생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45년이 흘렀다.
도 씨는 당시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스크랩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국방부는 5일 낮 1시 40분경 서해 연평도 서북방 휴전선 남쪽 해상에서 우리 어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되었던 우리 해군방송선 1척이 북괴 해군 고속포함 2척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납북되었다고 발표했다.’(1970년 6월 6일자 1면)
도 중사를 비롯한 승조원 20명은 15분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수에서 밀렸다. 당시 우리 해군 함정은 크게 파손된 채 “북괴 쾌속 경비정과 교전 중”이라는 마지막 무전을 보냈다. 무전을 받고 15분 뒤 공군 F-5A 전투기가 긴급히 출격했지만 아군 함정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으로 피랍된 뒤였다.
국방부는 도 중사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가운데 1976년 그를 국군포로로 인정했다. 포로 신분으로 10년 이상 지나면 전사 처리가 가능한 방식으로 1994년 군 인사법이 개정돼 도 중사는 전사자로 분류됐다.
도 씨의 어머니 이수은 씨는 2013년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아들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도 씨는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북한에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을 요구하고 송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스스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온 국군포로는 총 81명이다. 현재 북한에 500여 명의 국군포로가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 씨의 기다림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