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에볼라 진압’이 주는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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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2차 확산/여야 공동대응]
美, 정무능력 갖춘 ‘에볼라 차르’ 임명… 감염자 實名 - 이동경로 밝혀 불안해소

메르스 사태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대립, 부처 간 혼선 등으로 혼란이 심화되면서 지난해 에볼라 사태를 극복한 미국 정부의 위기 대처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태 초기에는 우왕좌왕했지만 곧 정부 차원의 대처 매뉴얼을 정립하면서 사회적 동요를 막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메르스와 에볼라는 발병 원인과 처방도 다르고 한국과 미국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가적 보건 비상사태에 국정 최고 책임자와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시사하는 대목은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에볼라 사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이 상황을 책임지고 조율할 전문가를 임명해 과감히 권한을 부여했다는 점.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 사태가 터진 지 20여 일 만에 ‘에볼라 차르(총괄조정관)’로 앨 고어 전 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론 클레인을 지명해 모든 정보 조율과 실무 조치를 전담케 했다. 임명 당시 ‘레볼루션’이라는 벤처투자회사 대표였던 그는 에볼라 관련 주요 회의가 열릴 때마다 대통령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론 클레인이 의사 같은 보건 전문가가 아닌 정무적 감각을 갖춘 행정 전문가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에볼라 사태 해결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오히려 국민 입장에서 균형 있는 판단력을 내려 유연한 조치가 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줄리 피셔 조지워싱턴대 공공보건학과 교수는 당시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에볼라 사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무부 등 관련 부처를 조율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무적 행정 능력이지 의학 지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시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쉬운 언어’로 대국민 메시지를 던진 점도 사태 해결에 주효했다. 에볼라 사태 때 미국은 ‘피어볼라(Fear+Ebola·에볼라 공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동안 큰 혼란에 빠졌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주례 라디오 연설 등을 통해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 그는 에볼라 공식 발병 후 12일 뒤인 지난해 10월 19일 20여 분의 라디오 연설을 모두 에볼라 사태에 할애하며 “에볼라는 심각한 질병이지만 우리가 히스테리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매년 수천 명의 미국인이 감기로 죽는다. 이럴 때일수록 사안을 합리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파격적인 이벤트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특히 에볼라 환자 치료 과정에서 자신도 감염된 간호사 니나 팸 씨가 미 국립보건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에볼라에서 완치되자 그를 백악관 집무실로 초대해 포옹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 메르스 대처 과정에서 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정보 공개도 필요하면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미국의 에볼라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미 정부도 사태 초기 에볼라 확진 환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다가 투명한 정보 공개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자 첫 감염자인 토머스 에릭 덩컨 씨의 사망 이틀 후 곧바로 실명은 물론이고 집 주소와 사망 직전까지의 여행 동선까지 자발적으로 공개했다. 감염됐다가 나은 팸 씨의 경우 애완견이 에볼라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공개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사태 초기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 사태가 진정된 뒤 오히려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평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해 1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에볼라 정책을 지지한다’는 의견은 49%로, 그렇지 않다는 41%보다 8%포인트 많았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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