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역 앞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그곳에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꾸미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최근 국제 현상설계 공모전까지 마쳤다. 네덜란드 건축조경 전문가 비니 마스의 작품 ‘서울 수목원’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말한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고가 공중정원, 신선하지 않으냐”고. 그래서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당선작의 조감도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신선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답답하다.
대체 그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KTX 서울역 바로 옆에 있는 옛 서울역(사적 284호) 주변을 걷다 보면 불편함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고가도로는 옛 서울역의 경관을 도처에서 방해한다. 숭례문 쪽에서 걸어가면 고가가 옛 서울역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가로막는다. 염천교 쪽, 용산 쪽에서의 전망도 어수선하다.
옛 서울역은 우리 근현대사의 상징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 경성역(京城驛) 건물로 신축된 서울역은 숱한 세월을 거치며 서민들과 함께해 왔다. 우리 근현대 유산 가운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건축물이 어디 있을까. 2004년 KTX 서울역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서울역 앞으로 고가가 들어선 것은 1975년. 당시는 서울 곳곳에 고가도로를 건설하던 때였다. 청계고가 삼일고가 아현고가 미아고가, 이런 것들이 모두 그 무렵에 세워졌다. 고가도로는 개발시대 성장과 속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문제도 많았다. 차량은 고가 위를 빠르게 질주했지만 고가 아래 사람들은 어두침침한 그늘로 걸어 다녀야 했다. 분위기는 어둑어둑했고 주변 경관은 망가졌다.
문제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고가도로의 부작용을 인식하면서 우리 사회는 고가를 하나둘씩 철거하기 시작했다. 청계고가 삼일고가 아현고가 미아고가 등이 그렇게 사라져 갔다. 사람이 아니라 차량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 도시의 경관과 역사를 무시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서울역 고가 철거 논의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고가를 두고 거기에 정원을 만들자고 한다. 고가 위에 나무를 심어, 녹지 공간을 확보하고 서울의 명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하고 멋진 아이디어로 들린다. 하지만 고가 위에 나무를 심고 정원을 만든다고 해도 고가 밑은 여전히 답답하다.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고 주변 상권이 퇴화할 것이란 한숨도 나온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고가를 그대로 두고 정원을 만든다고 해도 옛 서울역의 경관은 여전히 훼손된다는 사실. 역사적 문화적으로 볼 때 서울역은 서울 도심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자 서울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것은 100년 후, 500년 후 우리 후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고가정원 논의는 서울역 고가를 바라보는 데 있어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애초에 왜 고가를 철거하려고 했는지, 그 처음의 상황과 인식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고가에 나무를 심는 것, 그래서 녹지를 늘리는 것, 그건 본질이 아니다. 녹지가 필요하다면 인근의 다른 곳에 정원을 만들면 된다.
옛 서울역은 서울을 대표하는 근현대 유산이다. 옛 서울역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모두 그 건물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고가도로가 이를 방해한다. 그런 고가를 그냥 둔다는 것은 옛 서울역에 대한 몰이해이자 무례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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