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가운데 감염 경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3차 확산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확진 판정이 나기 이전에 자유롭게 돌아다닌 환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첫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 22일이 경과했는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특히 일부 지자체들은 초기 대응에 실패해 확산을 자초한 정부 못지않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달 4일 정부의 메르스 대응을 비판하며 “이제부터는 내가 메르스대책본부장”이라고 자임했으나 서울시의 실제 대응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박 시장의 발언 이후 서울시에는 다산콜센터 메르스핫라인 등으로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전담병원이 없어 혼란만 커졌다. 서울시는 10일이 되어서야 보건소와 시립병원, 공공병원에 진료소를 설치하고 진료를 시작했다.
이 와중에 서울시의 산하 병원이자 정부가 지정한 메르스 진료 병원인 서울의료원의 진료부장은 소속 의사 90명에게 “메르스 환자를 받지 말라”는 e메일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부장이 보직해임이 됐다고는 하지만 공공 의료기관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메르스 환자를 거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의 상부와 현장이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부산시는 최근 정부에 부산대병원을 메르스 확진환자 치료기관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이 병원은 메르스 치료에 필수적인 음압시설(기압이 낮아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시설)이 없고 올해 8월에나 설치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충북 진천에서는 군청 내부 문건인 의심환자들의 이름 주소 등이 밖으로 유출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전남 지역 첫 환자 발생과 관련해 전남도는 마을 주민 등 접촉자 전체를 격리하라고 통보했지만 보성군은 환자 부인만 자가 격리를 시키는 등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간의 공조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메르스 환자가 일부 지역이 아닌 전국 곳곳에서 나오는 양상으로 바뀜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 의료기관들의 협조가 더욱 절실해졌다. 정부와 4개 지자체(서울 경기 대전 충남)는 이달 7일 세종시에 모여 ‘정부와 지자체 간 메르스 총력 대응을 위한 협력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빈틈없는 대(對)메르스 전투를 다짐했다. 물론 철저한 대응에 나서고 있는 지자체도 여럿이다. 그러나 몇몇 지자체들이 이처럼 답답한 행보를 계속한다면 메르스 진압은 늦어지고 국민의 불안만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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