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6시 반 미국 뉴욕 맨해튼 시빅홀에서 열린 뉴욕시 시민교양강좌 ‘뉴 아메리카 뉴욕’의 초청 강사는 조지프 김 씨(25·사진). 그는 12세 때 아버지가 굶어 죽고 어머니와 누나도 먹을 걸 찾아 뿔뿔이 흩어지자 배고픔을 참지 못해 16세 때 중국으로 탈북했다. 17세 때 미국의 대표적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Liberty in North Korea)’의 도움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수백만 북한 주민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문을 연 김 씨는 “중국에서 노숙자(꽃제비)로 지낼 때 자존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 모든 걸 다 버려야 했다. 교회에 숨어 지내다가 (개신교 신자인) 조선족 할머니와 함께 살려면 본명(김광진)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조지프’로 개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당시 (인간으로서, 자식으로서) 내게 남은 건 이름 석 자밖에 없었다. 그것조차 사라지는 것 같아 울고 또 울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본 수미 테리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시간 반의 좌담회 동안 내내 눈가가 젖어 있었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현재와 미래 얘기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밝아졌다. 김 씨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을 말해 달라”는 객석의 질문에 “실망스러웠다”고 대답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는 “중국에서 미국 대사관의 포드 자동차를 보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와서 보니 포드 자동차는 주로 택시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다른 더 좋은 차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행복과 꿈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내가 지금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게 가장 큰 행복이다. 1차 꿈은 먹을 걸 찾아 중국으로 탈북한 누나를 찾는 것이다. 그 꿈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숙연해졌다.
그는 뉴욕의 한 커뮤니티칼리지(2년제 대학)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그의 신간(‘같은 하늘 아래―북한의 기아(飢餓)에서 미국의 구원으로’) 발표회도 겸했다. 그는 기자가 현장에서 구입한 책에 사인을 해주며 ‘내일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날이 될 것이다(Tomorrow is going to be another beautiful day)’라고 영어로 쓴 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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