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생후 18개월인 둘째 아이 수현(가명)이는 집 앞 공원에서 놀다가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인지라 수현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가까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가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집에 왔다. 그게 시작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슈퍼 전파자인 ‘14번 환자’가 당일 아이와 같은 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6일 오전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콜센터 직원은 “수현이가 메르스 균에 노출됐을 수 있다. 외출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자가 격리라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직원은 “잘 모른다. 지역 보건소에 전화하라”고 했다. 다시 보건소에 전화했다. “수현이는 밖에 나가면 안 되고 가족들도 수현이와 접촉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18개월 아이와 부모가 접촉을 어떻게 피하라는 건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일요일 저녁엔 구청 공무원이 집을 찾아왔다. 그는 손 세정제 한 통과 마스크 몇 장, 생활수칙 안내문과 함께 10일까지로 기한이 적힌 자가격리통지서를 건네줬다. 우리가 “부모는 회사에 가도 되냐”고 묻자 그는 “가족들도 가급적 나가지 마라”라고 했다.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 직원은 “아이가 증세가 없다면 전파 위험이 없기 때문에 가족들은 정상적으로 외출해도 된다”고 했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회사에 보고했더니 10일까지 재택근무를 하라고 했고, 우리 가족의 ‘집단 격리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부터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를 1, 2분 거리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 차로 데려다준 뒤 퇴근 시간에 맞춰 데려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7세인 큰아이도 외할머니 집에 동행했다. 큰아이가 비록 격리 대상은 아니지만 유치원에 만에 하나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던 참에 마침 유치원이 휴원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할머니가 가까이라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맞벌이 부부는 감염 위험 때문에 아이 돌봐주는 사람에게 맡기지도 못할 텐데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외가에 가면 우리 부부는 식탁과 책상에 앉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마트에 가기 꺼림칙해 끼니는 주로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배달원들은 메르스 사태에 마스크를 쓴 채 일을 했다. 공연히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답답하게 한 건 행정기관 직원들이었다. 재택근무 첫날인 8일 건강보험공단에서 또 전화가 왔다. 공단 직원은 “○수현 선생님 맞으십니까”라고 물었다. 두 돌도 안 된 아기에게 ‘선생님’이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보건소와 아이 생년월일 등 신상정보를 공유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직원은 아랑곳없이 외할머니 이름,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 “이미 보건소에 신고했고 자가 격리 중”이라고 답했지만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행정기관들의 뒤죽박죽 행정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서울시에서 자가 격리자에게 일대일 모니터링 요원을 붙인다고 하더니 주민센터에서 “○수현 선생님 맞죠? 제가 담당이라는데요…”라며 매우 심드렁한 말투로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서울시메르스○○본부(?)라는 데서도 전화가 왔다. 정부와 지자체가 경쟁하듯 신경은 쓰고 있었지만 서로 간에 정보 공유는 전혀 안 되는 것 같았다.
압권은 보건복지부에서 수현이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메르스와 관련해 10일까지 출국금지 조치를 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문자메시지를 받은 시간은 10일 오후 3시였다.
수현이의 자가 격리는 11일 0시부터 풀렸다. 다행히 가족 모두 의심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다. 수현이가 비록 ‘행정적’으로는 자유의 몸이 됐지만 아직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눈치가 보인다. 수현이가 자가 격리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이 꺼려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팩트’와 상관없이 ‘무개념한 가족’으로 찍힐까 봐 걱정된다.
11일 오후 주민센터의 또 다른 직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수현 선생님 격리 중이시죠? 비타민과 체온계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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