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백신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약독화를 꼽았다. 약독화란 살아있는 바이러스의 독성을 아주 미약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몸에 해를 입히지 않고 인체의 면역체계만 자극해 면역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한번 바이러스와 맞닥뜨린 면역세포는 이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도록 지원군(항체)을 늘리는 등 면역 능력을 높여 다음에 바이러스가 대거 침입해도 무찌를 수 있도록 대비하는데, 이 원리를 이용한 게 백신이다.
특히 백신은 변신을 잘 하지 않는 ‘고지식한 바이러스’가 공격했을 때 더 효과가 크다. 한때 세계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던 천연두가 좋은 예다. 18세기 말 개발된 천연두 백신 덕분에 천연두는 1977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개발 역사상 가장 통쾌한 개가”라고 평가했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처럼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꿔 인간을 공격하는 카멜레온 같은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이 쉽지 않다. WHO는 매년 새로운 독감 백신 유형을 발표하는데, 이는 독감 바이러스가 자주 항원을 바꿔 인체에 침입하기 때문이다. 독감 바이러스의 항원이 변하는 속도는 천연두 바이러스보다 1만∼10만 배 빠르다. WHO는 독감 시즌이 시작되기 여러 달 전 올 시즌에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감 바이러스 변종을 미리 지목해 이에 맞는 백신을 생산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독감이 아무리 변신을 해도 예방 효과는 같은 ‘범용 백신(universal vaccine)’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연구진은 독감 바이러스의 모든 변종에 효과가 있고 면역 효과도 최소 20년 지속될 수 있는 범용 백신의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에볼라처럼 치사율이 너무 높아 약독화로 백신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에는 원형 DNA인 ‘플라스미드’에 항원을 집어넣은 ‘DNA 백신’이 연구되고 있다. 특히 DNA 백신은 50도 이상 높은 온도에서도 원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어 처음 에볼라가 창궐한 아프리카처럼 뜨거운 지역에서 사용하기 좋다. 서 교수는 “현재까지 DNA 백신의 면역반응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아 아직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유행하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는 2012년 발견돼 3년밖에 안 된 신생 바이러스인 만큼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백신 개발에는 5∼10년이 걸린다. 또 메르스가 중동과 한국 이외에는 전 세계적으로 감염자가 거의 없는 만큼 경제성이 떨어져 백신 개발이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