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은 안보의식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나라를 지킨(호국) 공훈에 보답한다(보훈)는 의미를 살리려면 국익과 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해체되면서 안보의식은 계속 옅어졌다. 전방견학과 병영체험, 방위성금 모금은 안보의식 고취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지금은 옛일이 됐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 요원 31명의 청와대 습격사건을 계기로 방위성금 모금 운동이, 1975년 베트남 패망을 기점으로 방위세가 신설됐다. ‘방위성금 헌납기’로 도입된 F-4 팬텀 전투기 사진이 신문을 장식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방위성금은 ‘북방정책(공산권 국가와 수교)’이 시작된 1988년 없어졌고 방위세도 옛 소련이 붕괴한 1991년 폐지됐다.
‘간첩’이라는 단어도 식상하고 낡은 말이 돼 버렸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게다가 산업스파이 테러범 등 한국의 국익을 노리는 대상이 냉전 때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따라서 ‘간첩’에 대응하는 개인의 안보의식이 더 높아져야 경제 전쟁이 치열해진 현 시점에서 국익을 제대로 지킬 수 있다.
간첩죄를 규정한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처벌만 놓고 보면 살인죄(5년 이상 징역)보다 무겁다. 하지만 간첩행위의 상대를 ‘적국’으로만 한정한 이 법은 탈냉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 요원이 한국을 상대로 간첩활동을 해도 처벌할 규정이 없는 셈이다. 적국이 아닌 우방, 심지어 동맹국에도 기밀은 유출될 수 있다. 안보의식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하는 이유다. 미국은 1996년 해군 정보국에서 일하던 한국계 로버트 김 씨를 ‘북한 잠수함 정보를 한국에 알려준 혐의’로 체포해 징역 9년, 보호관찰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011년 송민순 당시 민주당 의원은 ‘외국 및 외국인 단체에 국가기밀을 누설해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지부진하게 논의되다가 18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국가기밀 누설을 막는 방어막부터 만드는 안보의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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