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구에서 첫 메르스 확진환자(154번)가 발생하자 한 공무원은 허탈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비상근무를 하며 시시각각 병원과 보건소의 환자 동향을 파악했는데 정작 공무원 중에서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154번 환자인 김모 씨(52)가 소속된 대구의 한 구청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사태 초기 주요 정보를 공개하지 않던 정부는 7일 병원 명단 발표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정보 공개에 나섰다. 그러나 메르스 확산 차단에 앞장서야 할 공무원조차 정해진 수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 ‘폭탄주 회식’에 목욕탕까지 이용
대구의 한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김 씨는 지난달 27, 28일 삼성서울병원 제2응급실에서 치료 중인 어머니를 간호했다. 28일 귀가한 이후 2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주민센터에 정상 출근했다. 31일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전남 순천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주말농장과 결혼식장, 장례식장, 봉사단체 회장 이·취임식 등 모임이나 행사에도 계속 참석했고 경로당과 기초수급자 가정까지 방문했다. 김 씨는 이때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대구시는 미세 증상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해당 주민센터는 15일 폐쇄됐다.
김 씨는 8일 동네 횟집에서 주민센터 직원 10여 명과 회식도 했다. 동료가 다른 곳으로 인사 발령이 나면서 마련된 자리였다. 김 씨와 참석자들은 폭탄주까지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모임은 2, 3차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2, 3차 장소가 있는 인근 지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김 씨는 11일엔 구청 근처 음식점에서 동료 몇 명과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보건 당국은 김 씨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삼성서울병원 방문자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철저한 역학조사를 벌였다고 했지만 김 씨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예 모니터링 대상에서도 누락돼 있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주거 부정자도 아니고 신분이 확실한 공무원이 방역 추적망에서 제외됐다. 더구나 같이 문병했던 큰누나가 1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본인뿐 아니라 당국이 전혀 알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13일 오전 오한을 느꼈지만 신고하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14일 오후에는 집 근처 목욕탕도 다녀왔다. 해당 목욕탕은 방역 작업 후 15일 폐쇄됐다. 김 씨는 15일 관할 보건소에 자진 신고할 때까지 감염을 의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큰누나 입원 사실도 알았지만 그때까지 자신은 이상이 없어 괜찮을 거라고 믿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 관계자는 “김 씨가 ‘내 몸은 내가 잘 알아서 감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걸 볼 때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격리된 김 씨와 수차례 통화해 동선을 캐묻고 있지만 워낙 광범위해 접촉자의 구체적인 신원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 일단 밀접 접촉자인 가족 4명과 주민센터 직원 14명, 목욕탕 종사자 2명, 회식 참석자 10명 등 30여 명을 자가 격리 조치했다. 목욕탕 손님 10여 명은 신원을 파악 중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의 첫 메르스 환자가 공직자라는 사실에 참담하고 죄송한 심정”이라며 “짧은 시간 내에 도시가 안정을 찾고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곳곳에서 ‘늑장 대처’
충북 진천에서는 한 군청 공무원이 삼성서울병원을 다녀온 뒤 13일이나 그대로 근무했다. 조사 결과 이 공무원은 지난달 28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장인의 병문안을 다녀온 뒤 8일 오후 3시 반 보건소에 자진 신고했다. 그러나 보건소 측은 상급기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충남 천안에서는 한 중학교 교사가 7일 확진환자 경유 병원인 아산충무병원에 병문안하러 다녀온 사실이 확인돼 12일 자가 격리 대상자로 지정됐다. 이 교사는 월요일인 8일부터 학교에 출근해 금요일인 12일까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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