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 양국 국민의 역사 인식 격차가 5년 전보다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확대됐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포함해 과거사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5%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지만 일본인은 절반가량인 49%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사히신문 측은 “과거사 인식에 관한 여론조사는 1999년부터 띄엄띄엄 해오고 있는데 ‘해결됐다’고 말한 일본인 응답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응답보다 많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관련해서도 일본인 사이에서는 ‘지금까지의 사죄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됐음이 이번 여론조사에서 두드러졌다. ‘일본이 충분히 사죄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1%에 불과했지만 일본인은 65%로 나와 5년 전 조사(55%)보다 크게 늘었다.
식민지 지배 피해 보상 문제에서도 인식 격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일본이 식민지배 피해자 보상을 재검토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89%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일본인의 69%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때문이었는지 일본인 여성들 사이에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응답(49%)이 ‘해결됐다’(41%)보다 약간 높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한일 시민들은 큰 시각차를 보였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 개선에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95%가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 일본에선 53%만 중요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응답자들을 연령대로 나눠볼 때 일본인들의 경우 20∼40대에서 ‘중요하다’고 말한 비율이 60%로 60대(40%)보다 높아 젊은층일수록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인권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일본인들의 74%가 ‘보상 문제는 법적 해결이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지지했고 한국인의 경우 78%는 ‘한일협정 협상 때 거론되지 않았던 문제로 미해결’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했다. 각자 ‘상대국 정부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비율도 여전히 높았다.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시절이던 1995년 ‘아시아 여성기금’을 설립해 총리의 사죄 편지와 국민 기부로 모은 위로금을 일부 피해자에게 전달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자 한일 양 국민 상당수(한국인 77%, 일본인 64%)가 몰랐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여성기금을 통한 과거 문제 해결 노력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당시 다수 피해자는 민간모금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수령을 거부했다.
과거사 대립은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한 인식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이 여론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재 한일 관계가 잘돼 가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한국인 3%, 일본인 7%에 불과했다. 5년 전 조사 때는 긍정적인 응답이 한국인 29%, 일본인 33%였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 한일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말로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필요시 최소한(범위에서) 교류하는 나라’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많은 응답은 ‘대립하고 있는 나라’를 꼽았다. ‘교류가 왕성한 나라’(한국인 8%, 일본인 12%) ‘여러 분야에서 깊이 협력하는 나라’(한국인 9%, 일본인 8%) 등 긍정적인 응답은 소수였다. ▼ 韓 46% “일왕 한국방문 찬성”… 日 48% “독도문제 빨리 해결을” ▼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 때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 의사를 타진한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거론돼 온 일왕의 한국 방문에 대해 양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조사에서 일본인은 반대가 42%로 찬성(39%)보다 많았다. 반면 한국인은 찬성이 46%로 반대(39%)보다 많았다.
일본인은 5년 전인 2010년 조사 때만해도 62%가 일왕의 방한에 찬성했다. 당시 반대는 22%에 불과했다. 일본인이 일왕의 방한에 부정적으로 돌아선 것은 2012년 8월 14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도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다. 또 ‘통석의 염’ 뭐가 어쩌고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이후 한일 관계가 크게 악화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사히신문이 일본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한일 모두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 문제에 대해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는 질문에 일본인의 48%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 44%는 ‘그럴 필요 없다’고 답했다. 독도 강탈을 논의의 대상으로조차 여기지 않고 있는 한국과 영토분쟁으로 보려는 일본의 인식차를 보여준다. ▼ “양국 관계개선 의지 커… 전략적 대응을” ▼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이 본 설문 결과
한일 양 국민이 상대국에 대한 이미지가 최근 5년간 급격히 나빠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특히 한류 붐이 불면서 한국에 호감을 가졌던 일본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 안타깝다. 다만 일왕의 한국 방문에 대해 한국인의 찬성이 많은 것은 한일 간에 일왕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 갭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인은 일왕이 한국에 와 사죄를 하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은 일왕은 정치적 해결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정치적 해결은 총리의 몫으로 보기 때문에 일왕 방한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독도 영유권도 일본인의 48%가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토문제가 앞으로 한일 간에 중요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다만 한일 관계가 좋아지길 바라는 한국인이 87%나 되는 것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일본이 필요하고 중요한 국가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 역시 관계 개선을 바라는 응답이 많았는데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일 관계에 긍정적이다.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공동 여론조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실시했다. 5년 전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때와 비교해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확인하려는 의미가 컸다. 동아일보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7, 28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모두 21개 항목을 물었고 이 중 6개 항목이 2010년과 같은 질문이었다. 아사히신문은 5월 13일부터 전국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우편으로 설문지를 보냈고 15일까지 2147명이 유효 응답지를 보냈다. 회수율은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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