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은 인구가 3만7000명에 불과한 유럽의 소국(小國)이다. 면적은 서울의 4분의 1 정도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다. 별다른 부존자원이 없는데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2013년 기준 1인당 GDP는 무려 15만2933달러(약 1억7000만 원)에 달한다. 관광국가 모나코(17만3377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중동 산유국인 카타르(9만3352달러)와 쿠웨이트(5만2198달러)보다 많다. 국가 채무는 없다시피 하고 실업률도 2.3%(2012년 기준)로 대단히 낮다. 리히텐슈타인은 어떤 방법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었을까.
입헌군주국인 리히텐슈타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정부 재정이 부족해 군주가 소유한 미술품을 팔아 국가 재정에 보태야 할 정도였다.
리히텐슈타인은 우선 금융업 육성부터 시작했다. 인접 국가인 스위스에서 금융업이 발달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유럽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해 전 세계 자산가들의 재산을 유치한다면 금융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50년대에는 저축은행 수준의 은행 2개가 수도 파두츠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군주가 직접 프라이빗뱅킹(PB) 은행인 LGT은행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금융업을 일으켰다. 현재 파두츠에는 10여 개의 대형 은행이 영업을 하고 있다. 금융업의 규모는 상당하다. 민간 PB 은행 중 하나인 VP은행의 고객자산이 지난해 385억 스위스프랑(약 46조 원)에 달할 정도다.
지리적 이점은 살리면서 약점은 보완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인구가 적어 기업들이 성장하기엔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 인접국의 전문인력을 적극 유치했다. 현재 리히텐슈타인에서 발생한 3만6000개의 일자리 중 절반이 인접국에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의 몫이다. 기업 유치를 위해 세금을 낮게 책정하고 전 세계 기업에 문호를 개방했다. 그 결과 리히텐슈타인의 최대 기업은 글로벌 직원 수가 리히텐슈타인 전 국민의 60%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1941년 설립된 공구·건설장비 생산업체 힐티는 120여 개국에서 2만2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국가원수가 직접 기업의 CEO를 겸임할 정도로 친기업 환경을 갖춘 리히텐슈타인에는 현재 4000개가 넘는 기업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한국과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경제를 살리려고 동분서주하는 국내 지방자치단체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국내 지자체들은 지역경제 성장과 관련해서 대동소이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장점과 약점을 꼼꼼히 따져 먹거리를 발굴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성장전략이 겹치며 청사진에는 ‘첨단’이라는 단어만 난무한다. 장점과 단점을 처음부터 다시 파악하고 장기 성장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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