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번 남편 이어 82번 부인 숨져… 자식들은 임종도 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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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한달]대전서 부부 첫 사망

부부는 2주 사이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3일 사망한 남편(36번 환자·82)은 세균성 폐렴과 천식을 앓아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82번 환자·81)은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남편을 간병하는 과정에서 감염됐고, 18일 오전 1시경 안타깝게 숨졌다. 두 사람은 국내에서 메르스로 사망한 첫 번째 부부가 됐다.

○ 부모 마지막 못 지킨 ‘불효’ 어떡하라고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자식의 심정을 아십니까? 그것도 두 분 모두….”

보름 간격으로 세상을 뜬 부모 앞에 자식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부는 3남 1녀를 두었지만 두 아들과 며느리 등은 병문안을 왔다 지난달 31일부터 자택에 격리됐다 14일 해제됐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자택 격리 상태여서 임종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자식들은 17일 오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충남대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지막’은 허락되지 않았다. 방역당국이 감염 위험을 우려해 막은 것이다.

결국 자식들은 보름 간격으로 부모를 잃는 과정에서 임종과 장례 모두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부모뿐 아니라 부모의 마지막 길조차 챙기지 못한 ‘불효’에 가슴 아파할 자식들을 더욱 안쓰러워하는 분위기다.

자식들 역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부모의 사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숨진 부부의 거주지 관할인 대전 유성구보건소 관계자는 “부인은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다 감염됐고 보름 만에 남편을 따라갔다”며 “자식들도 허망한 듯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당일 시신을 화장할 때도 자녀들의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다. 대전시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 자녀들과 상의해 합동장례식을 치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화장도 남들 시선 의식해 일과시간 이후에 진행

“마지막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데서 유족들의 슬픔이 더욱 커집니다.”

메르스 사망자의 장례를 돕고 있는 이상재 한국노년복지연합 장례분과 위원장은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마음 놓고 슬퍼하지도 못하는 유족들의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을 비롯한 장례 지도사들은 메르스 사망자의 시신이 든 관을 운구하여 무사히 화장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지금까지 처리한 망자는 총 6명이다.

‘메르스 사망자는 화장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동요할까 봐 항상 일과시간 뒤인 오후 5시 이후 화장을 진행한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남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적지 않은 유족들이 이 과정에서 “너무 억울하다” “이렇게 보내서 미안하다” “불쌍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일부 유족들은 슬픔이 너무 격해져 분노를 나타내기도 한다. 17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을 한 메르스 사망자의 유족들은 “병을 고치러 병원에 갔다가 죽는 병을 되레 얻었다”는 말을 하며 울분을 표현했다.

감염 위험 탓에 염습을 하지 못하는 것도 유족들을 안타깝게 한다. 이 위원장은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염습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억울하다고 말하는 가족도 봤다”며 “전통적인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감염자 사망의 경우 3일장을 하지 못하고 24시간 이내에 화장을 해버리는 것에 대해 (유족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메르스 사망자들의 장례를 돕는 장례 지도사들은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하기 위해 시신을 운구할 때 방호복, 마스크, 장갑 등을 갖추고 일한다.

○ 유족 심리치료 프로그램 운영

한편 정부는 메르스 사망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감염병으로 갑자기 사망한 환자들의 가족이 겪을 심리적 고통이 만만치 않고, 이로 인한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상황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건당국은 국립서울병원에 심리위기 지원단을 마련했다. 또 5개 국립병원과 광역 정신건강센터에 위기상담 대응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대전=이기진 doyoce@donga.com / 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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