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이 끼워넣은 ‘already’ 단어 하나… 한일병합조약 무효 시점 논란 불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한일협정 국제법적 해석 논쟁

광복에서 정부수립, 한일 국교 정상화까지 한국은 역사의 주요 순간마다 국제법을 마주했다. 현실적 제약 때문에 불충분하게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어 하나가 얼마나 큰 파장과 후유증을 불러왔는지 따져보면 놀라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1948년 남한 단독 선거로 정부를 수립하자 유엔 총회는 그해 12월 결의안 195(Ⅲ)를 채택해 이를 승인했다. 여기서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한 문장이 문제가 된다. ‘such(그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도, “한반도에서 유엔 감시 아래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만의 정부”라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후자는 ‘38선 이남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의미로 북한 지역은 포함하지 않는다. 당시 유엔 미가입국이던 한국은 결의안에 의견을 낼 수조차 없었다. 이런 해석 논쟁은 한일협정 체결 때 재연됐다.

한일은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2조에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이미’라는 단어에 한일 갈등의 핵심이 응축돼 있다.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로 해석해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지만 일본은 한일병합 당시에는 합법인데 “이제는 무효가 됐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일본군 위안부의 위법성을 부인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당시 왜 한국은 이 표현을 받아들였을까.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 등에 따르면 1965년 2월 막바지 교섭에서 일본이 ‘already’라는 단어를 제안하자 한국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 확인조항(한일협정 3조)’에서 ‘such’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북한을 이겨야 한다는 냉전 논리 때문이었다. 한국에 원조를 주던 미국이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한일협정 체결을 압박했고 경제성장을 위한 외자 도입이 절실했던 한국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회담 참석자들은 “일본이 워낙 강경하게 ‘already’를 주장해 이를 받지 않고는 협정 체결이 불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한일협정에서 한반도 강점을 언급한 유일한 조항이 2조임을 고려하면 한일이 각기 다르게 ‘이미’를 해석할 여지를 남긴 점은 아쉽다는 평가다.

한국 정부는 1995년 10월 일본 정부에 한일협정 제2조에 대해 해석 변경을 공식 요구했다. 국회도 2조가 한국병합 관련 조약의 ‘원천무효’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한일협정과 함께 체결된 청구권 협정 제2조 1항에서 “(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되어 있다. 일본은 무상 3억 달러 지불로 보상이 끝났다는 태도다. 이 돈의 성격에 대해 일본은 “청구권의 대가가 아니라 경제협력”이라고 주장해왔다. 식민 강점이 합법이기 때문에 배상할 것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경협자금으로 청구권 문제를 해결했다는 일본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1960년 독일과 프랑스는 모든 청구권에 대한 완전 타결을 규정한 포괄협상을 맺었지만 프랑스가 강제 징집자 등에 추가 보상을 요구하자 독일은 2억5000만 마르크를 새로 출연했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한국의 요구에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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