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보건 시스템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조직 개편안은 이런 국민들의 기대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신종 감염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 ‘복지부 산하의 질병관리본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기능만 소폭 보강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 병원 내 감염 전담 부서 없어
본보가 입수한 ‘국가 공중보건 위기 대비 조직역량 강화 방안’에 따르면 보건당국은 3센터 체제에서 4부 1센터 체제로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신종 감염병 관리를 위한 부서를 특화했지만, 나머지 부는 기존 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병원 내 감염’을 전담 관리할 부서가 없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국립보건원 시절인 2003년까지는 세균질환부 산하에 병원감염과가 있었지만 2004년 질병관리본부 출범 이후 사라졌다. 이종구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소장은 “당시 병원 감염 관리 역할을 축소하고 항생제 내성만 관리하는 과를 만들었다”며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병원 내 감염만 전담하는 부서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개편안에는 위기 상황에서 국민과의 소통 강화책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관리과장이 홍보 역할까지 맡고 있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질병관리본부 독립 없인 개혁 효과 미비
무엇보다 질병관리본부장이 위기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모순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메르스 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선제적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 질병관리본부장(실장급)이 병원 봉쇄, 강제 격리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서야겠다는 판단을 해도 권한이 부족해 경찰, 지방자치단체의 협조 없이는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군의관, 간호장교 등 군 인력 차출이 필요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질병관리본부를 독립시키고, 외청(차관급) 또는 처(장관급)로 격상시키지 않는다면 어떤 개편을 해도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복지부의 소극적 개편 움직임이 행정 관료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보건 전문가는 “현재 복지부의 보건 요직은 행정고시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데, 질병관리본부 등 보건 분야가 독립되면 병원, 보건소 등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 수 있어 이를 묶어두려 하는 것이다”라며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도 차관급 대우를 받고 있는데, 질병관리본부장의 권한 강화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 즉각대응팀 로드맵도 필요
감염병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역학조사단을 상설화하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역학조사관을 늘리기로 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역학조사단의 인력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삼성서울병원에 투입된 즉각대응팀은 감염내과 전문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방의학 전문의, 바이러스 전문가 등 역학조사에 필수적인 인력이 빠져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즉각대응팀을 만드는 것보다는 어떻게 구성하고, 위기 시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가 더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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