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임모 씨(34·경기 군포시)는 17일 아빠가 됐다. 아내가 귀여운 첫아들을 출산한 것이다. 그러나 22일까지 임 씨는 아들을 품에 안기는커녕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산후조리원 측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모든 외부인의 면회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원래 임 씨는 산후조리원에서 아내와 함께 머물 계획이었다. 그러나 메르스 탓에 아내의 산후조리가 끝나는 24일까지 ‘생이별’을 감수해야 한다. 할 수 없이 임 씨는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통해 아내와 아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임 씨는 “신생아의 면역력이 약하니까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답답하지만 그냥 참고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임 씨처림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예기치 않게 ‘이산가족’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주로 산후조리원과 요양병원 등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나 노인이 머무는 시설들이 외부 접촉을 장기간 제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김모 씨(47·여)는 20일 남편과 함께 경기 의정부시의 A산후조리원을 찾았다. 두 손에는 손자에게 줄 옷과 육아용품이 잔뜩 들어 있는 짐꾸러미를 들었다. 4일 꿈에 그리던 외손자가 태어났지만 방문 제한 조치로 2주 넘게 조리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조리원 측의 배려로 정문 창 너머로 손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들은 딸이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는 손자 사진과 영상을 바라보면서 퇴원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박모 씨(54·여)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다. 벌써 한 달 가까이 어머니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흔 살이 넘은 박 씨의 어머니는 경기 성남시의 B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 이 병원은 5월 말 메르스 환자가 늘어나자 면회를 전면 금지시켰다. 박 씨는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많이 쇠약한 편인데 그나마 자주 가족들 얼굴을 보면서 버티신 편”이라며 “자칫 외로움 탓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면회 제한이 길어지면서 박 씨는 “언제쯤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몇 차례 물었지만 병원 측은 “억울하면 퇴원시키라”며 완강한 입장이었다.
서울 강서구 C재활병원은 이달 초 병원 1층에 투명창으로 별도의 면회구역을 마련했다. 면회가 제한되면서 환자에 대한 걱정이 커진 가족들의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증환자는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최모 씨(38·여)는 뇌출혈로 입원 중인 어머니를 면회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다. 최 씨는 “어머니가 1층 면회실까지 내려올 수 없어 만나지 못했다”며 “메르스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어머니에게 문안인사 한 번 드리지 못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산후조리원이나 요양병원 이용자들이 메르스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지만 이들과 해당 시설들 모두 감염 차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A산후조리원 관계자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중요하다”며 가족들의 이해를 구했다. 경기 평택시 D산후조리원에서 조리 중인 채모 씨(31·여)도 “가족에게 미안하지만 아기를 위해 조심해야 하는 시기니 잠깐의 헤어짐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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