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인기는 아베노믹스(Abenomics)가 떠받치고 있다. 이 정책으로 일본은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했다.
아베 총리가 취임하던 2012년 12월 26일 닛케이 평균주가는 1만230엔이었는데, 약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은 선진국 중 가장 높았고, 대기업 실적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보다 일손을 구하는 기업들이 더 많아 대학 졸업생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경제적 성과를 낸 까닭에 아베 총리는 초반 주변국과의 갈등, 최근 안보법제 제정 및 개정 논란에도 상대적으로 견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놀라운 성과를 낸 아베노믹스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무제한 돈 찍는다”
아베노믹스는 흔히 ‘세 개의 화살’로 비유된다. △대담한 금융정책 △기동적인 재정정책 △새로운 성장전략이다. 하나의 화살은 부러뜨릴 수 있지만 세 개의 화살을 묶으면 부러뜨릴 수 없다는 일본의 옛이야기에서 따온 표현이다.
대담한 금융정책은 돈을 무제한 풀겠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풀 것인가. 목표 인플레이션인 연 2%를 달성할 때까지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금융 완화를 하겠다”며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넘치는 돈이 주식시장으로 밀려들면서 주가가 폭등했고, 버블 이후 침체되던 부동산 시장에도 온기가 돌았다. 어느 정도 약발이 먹히는 기미가 보이자 구로다 총재는 지난해 11월 연간 자금 공급 규모를 10조 엔(약 90조 원) 이상 더 늘어난 80조 엔(약 720조 원)으로 확대했다.
엔화가 넘치는 만큼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치솟았다. 취임 때 달러당 85엔 정도였던 환율은 최근에는 123엔 이상이다. 엔화 약세 덕분에 좋은 실적을 올린 수출기업들은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릴 여력이 생겼다.
조인직 KDB대우증권 도쿄지점장은 “일반적인 경우 자국 화폐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를 높여 국민이 반발할 수 있지만 때맞춰 국제유가가 하락하며 이를 상쇄했다. 운이 좋았다”며 “국제유가 하락은 원자재를 수입하는 일본 기업들의 실적을 호전시키는 역할도 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화살도 적중하나
두 번째 화살인 재정정책은 정부가 직접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지금까지 20조 엔(약 180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풀었다. 아베노믹스의 온기가 주로 자산을 가진 부유층과 수도권에 집중된다는 비판을 감안해 사용처는 지역경제 활성화, 중소기업 지원, 소외계층 복지대책 등에 집중됐다.
하지만 첫 번째 화살과 달리 갈수록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은 돈을 계속 찍을 수 있지만 정부가 재정을 늘리려면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야 한다. 특히 일본은 국가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는 상황이어서 더 악화될 경우 신용등급 하락 등의 우려가 있다.
세 번째 화살인 새로운 성장전략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용 유연성 확보, 원격 진료 등 서비스산업 활성화, 과감한 규제개혁 등의 방향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활성화 방안과 비슷하다. 그런 만큼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해집단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구조개혁 없이 돈의 힘만으로 경제를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무제한 돈을 풀었다고는 하지만 인플레이션 2%의 목표 달성은 아직 요원한 상태다. 당초 올해까지로 계획했던 일본은행은 목표 시점을 내년으로 늦추며 여전히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야마구치 유타카(山口泰) 전 일본은행 부총재는 최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친정인 일은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금융완화로 물가만 올리면 된다는 환상을 버리고 인구 감소에도 성장력을 유지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재정 악화에 대비해 ‘신뢰할 수 있는 재정 재건 계획을 추진할 것’을 제언했다.
아베노믹스의 혜택이 일부에만 몰리며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현상이다. 실적이 좋아졌다는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이고 고용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정규직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하위층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지갑을 선뜻 열지 못하고 있다.
구마노 히데오(熊野英生) 일본 다이이치세이메이(第一生命)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업 수익이 사상 최대라고는 해도 연금생활자나 비정규직이 많아 가계 부문까지 그 돈이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완화와 기술혁신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는 동시에 재정 부문까지 재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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