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다시 짙은 구름이 덮였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의 내홍은 출구(出口)조차 보이지 않는다. 친박(친박근혜)계가 정한 6일 사퇴 시한을 유 원내대표는 “왜 당신들이 이런 것을 정하느냐”는 식으로 받아쳤다. 유 원내대표의 다음 행보를 둘러싼 별의별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지만 별 뾰족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열쇠는 유 원내대표 본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 “유 원내대표의 결자해지(結者解之)가 필요”
박근혜 대통령의 ‘6·25 국무회의 발언’ 직후에는 ‘유승민 찍어내기’에 나선 친박계에 비판이 쏠렸다. 그러나 6일을 고비로 여론의 흐름은 요동칠 조짐을 보인다. 집권여당은 야당과 달리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박 대통령의 ‘독선’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박 대통령을 임기 중간에 물러나라고 할 수는 없다. 유 원내대표도 그런 여권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끝 모를 치킨게임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국민도 불안해한다. 여권의 한 중진은 “달은 차면 기운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유 원내대표가 거취 문제를 정리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유승민 사태’가 불거지면서 주요 정책을 조율해야 할 당정청 회의는 실종됐다. 청와대와 ‘끈’이 없는 여당 원내대표가 충분한 대야 협상력을 갖기도 어렵다. 누구든지 “수평적 당청관계”를 역설했지만 당청관계의 채널이 끊겨서는 안 된다. 이런 상태라면 아무리 여당 프리미엄을 누리고자 해도 여당의 기능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 원내대표) 한 사람의 정치 운명이 걸린 일이라 해도 국민이 볼 때는 당내 계파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보인다”며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가 싸워서 나랏일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박 대통령은 여권의 상수(常數)일 수밖에 없다”며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와 별개로 유 원내대표가 ‘버티겠다’고 하면 이 사태를 풀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 무조건 버티기가 능사인가
유 원내대표 주변에선 “굴복하듯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무조건 버티기는 능사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친박계가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국민은 결국 대통령과의 전면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적 책임이라는 게 잘못이 없어도 상황에 따라 짊어지는 것이고 그게 곧 명예로운 퇴진”이라며 “시간이 흐른다고 여권 내홍의 핵심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당이 대통령 우위에 있는 국가는 없다”고 조언했다.
결국 유 원내대표에게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현실적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망은’ ‘배신’ 등 말로 압박하는 것은 효과가 없고 거수로 평가해 유 원내대표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 측근인 김세연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의원들이 거취를 정해주시면 겸허히 이에 따르겠다’는 의사 표시를 할 필요가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유 원내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 “친박계도 분위기 조성에 나서야”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은 유 원내대표도 현재 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정책 전문가인 그는 지금과 같은 극한 대치가 여권의 파국을, 나아가 국정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꿰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유 원내대표와 각을 세우는 친박계도 자연스러운 분위기 조성에 나서야 한다.
이내영 교수는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친박계가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유 원내대표를 ‘배신자’라며 사퇴하라고 하는 논리는 궁색하다”며 “당권을 위한 싸움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과 나라가 살기 위해 유 원내대표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비박계 원내 사령탑을 세우자’는 식으로 타협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먼저 사의를 밝혀 러닝메이트인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유도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댓글 0